그러나 이는 틀린 대답이다. 정답은 독일의 벤츠. 포드가 ‘자동차 왕’이라는 별명과 함께 최초 발명자로 잘못 알려진 이유는 자동차의 대중화를 포드가 이뤘기 때문이다.
19세기말 에디슨의 전기공장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포드는 퇴근 후면 집 창고로 직행, 자동차 발명에 매달렸다. ‘발명의 왕’을 사장으로 두고 있었으니 ‘그 사장에 그 직원’이었던 셈.
▼삼륜차로 '신화' 시작
에서 아무런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힘든 작업이었지만 포드는 오랫동안 간직해온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이던 자동차를 값싸고 실용적으로 만들어 모든 사람들에게 보급하겠다는 꿈이었다.
1896년 포드는 마침내 삼륜차를 만드는데 성공한다. 100% 수작업으로 이룬 쾌거였다. 비록 1기통에 최고시속은 20㎞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 삼륜차 개발 성공은 포드 자동차 신화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간 헨리 포드는 힘이 닿는대로 자동차를 만들어 팔다 1903년 목수 변호사 은행가 회계사 등 11명의 주주를 모아 본격적으로 자동차사업을 시작했다. 그해 7월 2기통 엔진의 ‘A모델’을 시작으로 차례차례 새 모델을 내놓던 포드는 1908년 ‘T모델’을 탄생시킴으로써 ‘자동차왕국’으로 발돋움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결혼 필수품' 포드차
포드가 “모든 사람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바로 그 자동차”로 평가했던 T모델은 탄생 이후 1927년 단종될 때까지 19년 동안 총 1500만7033대가 팔려나가는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이 기록은 1970년대에 독일 폴크스바겐의 ‘비틀’에 의해 깨질 때까지 최다 판매기록으로 남았다. 당시 미국에서는 ‘T모델을 사지 않은 남자는 장가 가기 힘들다’는 말이 나돌았을 정도.
차량 가격을 최대한 낮추겠다는 창업 정신은 1913년 컨베이어 벨트 생산 방식의 탄생으로 이어져 자동차 대량생산의 기틀이 마련됐다.
‘부자들의 장난감인 자동차를 서민들의 생필품으로 바꾸겠다’는 신념. 이 일관된 신념이 포드의 자동차 왕국 건설을 가능케 했다.
〈금동근기자〉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