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감청남발 법원책임도 크다

  • 입력 1999년 10월 5일 19시 37분


우리 사회에 전화감청이 많이 행해지고 있는데 대해서는 사법부의 책임도 크다. 수사기관의 마구잡이식 감청영장 청구도 문제지만 이를 거의 무조건 통과시키는 법원의 자세에도 문제가 적지 않다. 그저께 서울지방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 법원의 감청영장 발부율이 지난해 98.9%에서 올해 99.6%로 높아진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수사기관이 긴급한 경우에 먼저 감청을 하고 나중에 영장을 신청하는 긴급감청의 영장 발부율은 98년 이후 100%로 나타났다. 수사기관이 감청을 하고 싶으면 언제든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개별사건에 대한 감청영장 발부가 온당한지 여부는 우리가 일일이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처럼 100% 또는 그에 가까운 영장 발부율은 법원의 영장심사가 과연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한다. 작년 정기국회때 감청의 남용문제가 논란을 빚은 뒤 법원은 판사회의를 열어 감청영장에 대한 철저한 심사를 다짐했었다. 그러나 그후에도 변함없는 높은 감청영장 발부추세는 법원이 견제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확신을 주지 못한다.

그동안 감청문제에 대한 논란은 주로 수사기관을 중심으로 진행돼 왔다. 그러나 이번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감청영장 발부율은 논의의 중심을 사법부로 옮겨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판사들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백지위임식 영장발부’가 여전한 이유가 뭔가.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들이 감청영장 청구 자체를 전보다 신중히 하기 때문에 기각할 대상이 적다고 변명할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수사기관의 감청남용 현상은 그동안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고 최근 통계도 이를 입증한다.

감청이 허가된 사례 중에는 인적사항조차 제대로 모르는 사람, 불특정 다수인, 피의자 외의 친인척 친구 등을 대상으로 한 것까지 있는 것으로 국정감사에서 지적됐다.

전화통화는 사생활의 기본을 이루는 부분이다. 프라이버시의 본질적 내용은 어떤 경우에도 침해할 수 없으며 공익상 침해가 불가피할 때는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 법의 정신이다. 감청의 남용을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기관은 사법부가 유일하다. 그만큼 사법부의 책임은 막중하다.

이제부터라도 사법부는 감청영장 심사권한을 최대한 발휘해 감청이 남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때마침 신임 대법원장이 새로운 각오로 취임한 만큼 전과는 한결 달라진 사법부의 면모를 보여주기 바란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