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나면 물불 안가려
한국 사람이 너무 화를 잘내고 욕설이 심하다는 내용의 책을 최근 읽었다. 중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공부하면서 저술활동을 하는 조선족 김문학(金文學)씨가 그 저자다. 그는 한국인이 화를 잘 내는 이유는 한국인이타고난‘천재’인데다 세계적인 울화통 민족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니 손해보고 고생하는 것은 빤한 이치라는 주장이다.
김씨는 중국 근대의 대학자 양계초(梁啓超)의 글도 인용한다. ‘조선인은 감정의 기복이 심하며 화를 잘낸다. 사소한 일에 목숨걸고 끼어들기도 잘하지만, 또 삽시간에 죽은 뱀처럼 아무리 쿡쿡 찔러도 꼼짝않는 모습으로 돌변해버린다. 그리고 조선인은 미래를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한국이여 상놈이 돼라’에서).
한말 영문월간지를 펴냈던 미국인 헐버트가 ‘조선멸망’이라는 책에 묘사한 것도 비슷하다. ‘조선인은 화가 나면 정신을 잃을 정도다. 자기 목숨같은 건 어찌 되어도 좋다는 상태가 되어 동물처럼 변한다. 입에 거품을 물고 마치 짐승같은 얼굴이 된다. 어릴때부터 자기 기분을 제어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 듯하다. 아이들도 어른을 본받아 마음에 맞지 않으면 미친듯이 광기를 부리고….’
지나친 표현도 없지 않지만 우리 자신을 되살펴보게 하는 날카로운 지적이 아닐까. 그렇게 물 불을 가리지 않는 성정(性情)들이 대부분이니 그들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나, 그 국민 가운데 뽑힌 엘리트 정치인들이 연출하는 정치가 감정적으로 흐르는 것일까. 정치 리더들이 더 화를 잘내고 더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대표선수들만 같다. 그러기에 국회가 시끄럽지 않은 날이 없고, 여야관계가 온전하고 편한 날이 없는 것 아닐까.
여야의 누구를 붙들고 물어보아도 정치가 꼬이고 상(傷)하는 이유는 명쾌하게 답이 나온다. 불신과 감정의 골 때문이라는 것이다. 설령 나라의 여러 부문이 감정적 ‘정서병’에 휩싸이더라도 정치만은 이성적으로 해답과 비전을 제시해야 할 터인데 오히려 정치일수록, 리더 일수록 감정적이라는 실토가 들린다.
예를 들어 정치가 왜 이 모양이냐고 야당측에 물으면 북풍 총풍 세풍으로 야당총재 죽이기에만 나서고, 도청 감청 계좌추적으로 뒤를 캐고 윽박지르니 우린들 쥐죽은 듯 가만 있을 수 있느냐, 야당총재가 감정이 상하지 않을 리 있느냐고 열을 올린다. 여당에 물으면 또 화를 낸다.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국무총리인준조차 거부하고 생떼를 쓰며 발목을 건 야당에 카운터파트 대접이 되겠느냐고, 세금도둑을 비호하고 터무니없는 인권시비로 맞서며, 외국에까지 나가서 나라 흉이나 보는 야당총재가 말이 되느냐고….
여당이건 야당이건 정치지도자들이 그렇게 감정에 사로잡혀 상승적(相乘的)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불행하게도 청와대나 한나라당의 상층부에는 가뜩이나 틀어진 감정을 부추기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말까지 들린다. 상대에 대한 적대감으로 뭉치는 이상한 일체감을 좇는다는 얘기다. 심지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전직 대통령주변에 조차 감정적 충동질이 보통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거품같은 政爭 중단을
명색이 정상의 권력을 누리고 온 나라를 좌지우지해본 그들끼리 ‘주막집 강아지’니 뭐니 하는 말을 주고 받는다. 김영삼 전대통령의 여러가지 정치적 공격도 국민 사이에는 감정적 대응으로만 비쳐진다. 지낼 것 다 지내고 해볼 일 다 해본 입장에서 그렇게 분노와 격정의 세월을 보낼 이유가 있을까 하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시선이다. 하지만 그처럼 전직 대통령들이 절치부심 앙앙불락하기 때문에 자연 그 주변에는 감정을 건드리고 충동질 이간질하는 소리뿐이라는 말도 들린다.
감정 과잉, 유감과 응어리 폭발의 정치가 차단되어야 한다. 부질없는 감정을 자제하고 거품같은 정쟁을 부끄러워하는, 나라 밖과 미래를 살피는 이성에 충실한 정치의 리더십은 언제나 올 것인가.
김충식<논설위원>sear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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