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세 평 꽃밭에 비유한 이 글 귀. 경북 봉화군 석포면 승부리의 영동선 승부역에 가면 만날 수 있다.
승부역은 첩첩산중 계곡안에 갇힌 작은 기차역. 오후 4시면 벌써 산그림자로 계곡안 역주변이 어두워질 정도로 깊은 산 속이다. 그나마 산 중의 답답함을 덜어 주는 것은 철로를 따라 흐르는 폭 20m 가량의 낙동강. 강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넓은 계곡물에 가깝다.
2층 슬라브건물의 아담한 역사 옆에는 세 평이 될까말까한 작은 꽃밭이 있다. 그리고 그 옆 바위에는 하얀 페인트로 이렇게 쓰여 있다. ‘승부역은 하늘도 세평이요 꽃밭도 세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 이제는 일흔살을 넘긴 한 역무원이 지난 65년 이 역에 근무할 당시 쓴 글이다.
이 역은 태백역에서 영주 방향으로 다섯번째 역. 승부리 마을과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 마을과 역사를 이어주는 것은 ‘출렁다리’라고 불리는 나무바닥 현수교 뿐. 31가구 승부리 마을 주민들을 외부와 이어주는 중요한 통로다. 물론 승부리와 석포면을 잇는 도로(11㎞)도 있다. 그러나 좁고 포장이 안된데다 공영버스 운행도 잦지 않아 하루 4번 정차하는 여객열차(통일호)가 중요한 교통편.
역무원은 4명. 매일 2명씩 근무한다. 이 곳에 4개월째 근무한다는 역무원 정회씨(31).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외롭지요. 하루 종일 사람 보기가 어려워서요.”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이따끔 통과하는 무궁화호 열차에서 승객들이 던져 주고 가는 주간지도 이들에게는 위안이 된다.
그러나 이 역에도 지난 겨울에는 찾는 이가 많았다. 철도청이 운행한 ‘눈꽃열차’ 덕이었다. 당시 도시사람들은 ‘세 평 하늘’ 아래 깊은 산중의 작은 시골역에서 겨울의 우수를 즐기며 주민들이 담그어 내놓는 엿술(옥수수술)을 감자전 안주로 마시며 풋풋한 인심도 느낄 수 있었다.
이 가을 승부역 주변도 이제 곧 단풍으로 물든다. 10일에는 철도청이 운행하는 단풍열차가 이 곳을 찾는다. 그러면 역앞 강변에서는 작은 장이 선다. 이 시골 장터에서는 국밥도 팔고 술판도 벌어진다. 주민들은 바리바리 싸온 산나물이며 조 수수 콩 감자 옥수수 보따리를 풀어 놓고 판다. 모두가 지난 봄과 여름 주민들이 땀흘려 제배한 농작물이다.10일부터 11월말까지 일요일마다 운행할 단풍열차가 승부역에서 정차하는 시간은 1시간40분(오후2시2분∼3시42분).
승차권단풍열차 이용요금은 2만5500원. 수도권 각역및 철도승차권 위탁발매소에서 판매. 문의는 철도여행안내센터(02-392-7788).
〈조성하기자〉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