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인 북]'한국 근대이행기 중인 연구'

  • 입력 1999년 10월 8일 17시 58분


▼ '한국 근대이행기 중인 연구' / 연세대 국학연구원 /신서원

왜 중인(中人)인가. 양반과 농민 사이의 평범한 계층으로 보이는 중인. 그러나 근대 이행기, 즉 18, 19세기 조선후기라는 시대적 상황과 연결시켜보면 그 의미는 각별해진다. 양반 밑에 있으면서 때로는 양반 못지않은 파워를 발휘한 카운터 엘리트. 이들 중인은 근대이행기에 변화의 주도 세력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중인연구는 미진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이 책은 그 자체만으로도 평가받을 만하다. 연세대 국학연구원이 3년전부터 계속해온 중인 연구의 결과물. 송복 연세대교수, 지수걸 공주대교수 등 역사학자와 사회학자 9명의 논문이 실려있다.

중인은 관청에서 일하던 전문 행정인력과 의학 통역에 종사했던 기술인력, 서얼 등을 포함한다. 세습신분에 갇혀있으면서도 노력에 따라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독특한 계층이었다. 양반이나 농민들이 변혁을 추진하기 어려웠던 조선후기 현실에서 이들은 변혁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

저자들은 이러한 점에 주목해 중인들의 역사적 의미를 고찰한다. 중인의 형성과정과 훈련 메카니즘, 중인의 사회의식, 양반 및 일반 백성과의 관계, 사회변혁 혹은 체제 유지에 있어서의 역할 등. 그 전모를 파악할 때, 근대이행기의 역사적 성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들의 기본 생각이다.

전문행정인력은 행정 실무를 장악하고 부를 늘렸으며 이를 바탕으로 문화 역량을 키워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기술인력은 기존 사회체제나 질서를 변혁하려는 움직임에서 가장 선도적이었다. 19세기엔 북학사상을, 구한말에는 개화사상을 받아들여 새로운 변화를 모색했다. 특히 통역을 하는 역관은 직업적 특성상 서구문물을 경험해 개화사상에 일찍 눈뜰 수 있었다. 저자들은 적지 않은 중인이 구한말 엘리트 지식인으로 발전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들어있다. 중인의 범주, 형성 및 발전과정, 변혁에 끼친 영향 등을 구체적인 자료와 통계를 바탕으로 치밀하게 고찰해야 한다는 점에 저자들은 동의한다. 따라서 아직은 어떤 결론을 내릴 단계가 아니다. 저자들도 연구의 시작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분명 값진 출발이다. 752쪽, 3만원.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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