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을 앞둔 SBS ‘당신은 누구시길래’(평일 밤8·55)의 제작진이 발을 동동 구른다. 소품으로 있어야 할 화분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SBS에서 ‘꽃 담당’ ‘조경 아줌마’로 통하는 엄복진씨(50)의 손길이 필요할 때다.
시청자들은 대부분 TV 화면에 등장하는 꽃이나 나무를 눈여겨 보지 않는다. 그러나 TV 프로, 특히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주변 환경은 상상외로 세심하게 만들어진다.
‘당신은…’의 경우 경기 일산시의 SBS 오픈세트에는 단풍 사철 등 70∼80 그루의 나무를 옮겨 심어 놓았다. 세트와 함께 부분적으로 화면에 노출되는 야외 장면을 위해 실제 조경을 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맛을 보여드립니다’(월화 밤9·55)에서는 국화와 벤자민 등 50여개의 화분이 소품으로 등장한다.
화면에 등장하는 탤런트만 드라마를 만드는 건 아니라는 엄씨의 자긍심은 대단하다. “시청자의 시선은 탤런트의 얼굴에 머물지만 주변을 자연스럽게 장식하는 꽃과 나무가 연기자의 얼굴을 더 예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공사’를 방불케 하는 대규모 조경 작업도 힘들다. 그러나 정말 꽃아줌마를 난처하게 만드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연출자의 주문. 93년 SBS ‘두려움 없는 사랑’을 촬영할 때의 일. 운군일PD가 5월에 갑자기 대본상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가 필요하다는 주문을 했다. 단풍을 구할 수 없어 결국 50여개의 나뭇잎에 물감을 칠해 ‘인공’ 단풍나무를 탄생시켰다.
현대적 드라마는 배경을 만드는 게 비교적 쉽지만 과거로 갈수록 배경 만드는 것이 어려워진다는 게 그의 설명.
91년부터 방송사와 인연을 맺은 그는 “이제는 TV 화면을 보면 탤런트는 보이지 않고 꽃만 눈에 들어오니 ‘직업병’인 것 같아 걱정”이라며 웃는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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