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리의 일본패션 엿보기]여학생들의 '루스 삭스'

  • 입력 1999년 10월 10일 19시 39분


일본 패션의 ‘데부짱(뚱뚱한 아이)스타일’은 일부러 뚱뚱하게 꾸며 귀엽게 보이려는 것으로 상식적인 아름다움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일본 여학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유행을 일으켰고 우리나라에도 물밀듯이 닥친 ‘루스 삭스(Loose Socks)’도 이 중의 하나다. 여학생 교복에 맞춰 신는 이 양말은 구불구불 볼륨감 있게 겹주름을 잡아 다리를 굵게 보여준다.

일본 국민성에는 획일주의적인 면이 있다. 무엇이건 하나로 묶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것이다. ‘양말은 반듯하게 신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깡그리 벗어던진 루스 삭스는 획일성에 빠지기 쉬운 일본 국민성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였다고 보는 이도 있다.루스 삭스를 탄생시킨 또 하나의 모태는 ‘만화왕국 일본’의 대중문화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만화 ‘치비 마루코짱(우리나라에는 ‘모모는 엉뚱해’로 번역)’에서 주인공이 신은 짧은 양말을 루스 삭스의 ‘원조’라 주장하기도 한다. 마루코의 양말은 어디까지나 보통 양말이지만 어쩌다 한쪽만 흘러내린 장면들을 보고 그렇게 느낀 모양이다.

그러나 훨씬 먼저 나온 ‘원원조’가 있다. 66년의 ‘마법소녀 사리짱’이다. 마법왕국의 공주 사리는 곤란한 일이 생기면 마법을 사용하여 풀어가는 해결사인데 빨간 구두에 하얀 반양말을 신고 있다. 바로 루스 삭스 스타일이다.

만화에서 태어나 획일주의에 저항하는 여학생 패션 루스 삭스.저항성과 귀여움을 조화시키며 현대 일본 미의식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다.

김유리(패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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