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홍은택/참회없는 美병사의 증언

  • 입력 1999년 10월 10일 19시 39분


6·25전쟁 당시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굴다리 밑에서 양민들을 향해 기관총 방아쇠를 당긴 에드워드 데일리는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본보 8일자 A2·A5면 보도)에서 양심은 살아있다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데일리를 포함한 참전군인들의 용기있는 증언은 피해자들의 일방적인 주장에 맴돌던 이 사건을 세계적 주목을 받는 미군범죄 사건으로 반전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데일리의 발언은 피해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49년 동안 불행한 기억을 가슴에 담아둬야 했던 회한에 대해서는 길게 말했으나 희생자나 유가족에게 사죄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는 유가족이 고통을 겪어야 했던 데 대해 “가슴아프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이것은 사과와 다르다.

기본적으로 그는 자신도 상관의 명령에 따라 양민들을 살해해야 했던 불행한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생각도 아주 잘못된 것만은 아닐지 모른다.

그는 개전초기 북한군에 밀려 피란민과 뒤섞여 퇴각하면서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 있었다고 말했다. 밤이 되면 어디서 총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공포에 떨었다고도 했다. 그의 상관은 민간인 속에위장한북한군이숨어있다는 판단으로 사격을 명령했고 병사들은 ‘공포를 제거하기 위해’ 명령에 충실히 따랐다는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코소보사태 당시 코소보난민에 대한 미군의 오폭을 예로 들면서 전투과정에서는 민간인의 희생도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양민들에게 총을 겨눈 군인들의 참회없이 데일리가 희망하는 진정한 화해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인가. 앞으로 진행될 진상조사나 책임규명과는 별도로 풀기 어려운 숙제가 될 것같다.

홍은택<워싱턴 특파원>euntac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