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천년을 두고 볼 때 인간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달라지게 만든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교통통신수단의 혁명을 포함한 과학기술의 경이적인 발달이고 다른 하나는 절대권력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 민주주의의 위대한 승리임에 틀림없다. 특히 민주주의의 진보와 함께 국가가 독점했던 권력행사에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NGO의 참여가 두드러진 것을 이번 서울대회가 본격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NGO는 동서간 냉전이 종식되면서 그 활동을 활성화하고 있다. 전체주의나 권위주의의 시대에는 물론이고 공산주의와의 첨예한 이데올로기 갈등, 그리고 전쟁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국가의 독단과 독선이 판을 쳐 시민단체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었다. 평화가 유지돼 그 배당(配當)이 늘어날 때만 시민단체들의 위상과 영향력은 커질 수 있다.
NGO는 민주화가 점차 실현됨에 따라 국가의 권력을 국가와 공유하거나 부분적으로 이양받아 가고 있다. 국민주권의 허구(虛構)에 담긴 모순이 계속 제기되고 정치적 파행이 만성화되면서 필요악인 국가가 그 무능을 노출해 국가가 할 수 없거나 국가에만 맡길 수 없는 문제가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특히 인권분야에서 국가를 능가하고, 환경보호에서 국가를 보완하며, 인도주의적 현장 활동에서 국가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주체로 등장해 지구차원의 문제에 대한 발언권을 강화해 가고 있는 것이 NGO라고 할 수 있다. 새 밀레니엄의 세계는 레온 듀기의 주장처럼 ‘국가가 단지 여러 단체 중의 하나’로 당장 조락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나 ‘풍부한 단체생활은 민주주의에 필수적이다’라는 드 토크빌의 통찰대로 시민사회의 결성이 확산돼 권력이 시민사회로 이동하는 탈국민국가적 현상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끝으로 세계화 현상이 보편화됨에 따라 NGO의 응집력과 기동력이 국가의 전매특허인 폭력과 강제력을 점차 무력하게 만들 것이다. 정보화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시민단체들은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관해 국가와 마찬가지로 신속히 알 수 있고, 공동관심사에 대해 국경을 초월한 공통의 유대를 즉각적으로 표시할 수 있게 됐다. 또한 그들은 어디에든 출현해 존재를 과시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현상에 가속도가 붙을 때 국가를 기본적 단위로 하는 현행 국제체제에 근본적인 구조변경이 초래돼 국제적 직접민주주의가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계속 전쟁이 없고 자유가 신장돼야만 NGO가 설 땅이 커질 수 있다. 이번 서울대회는 ‘뜻을 세우고, 힘을 모아, 행동하자’는 모토의 역점을 평화와 민주주의에 두고 실행 전략을 강구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이장춘(외교통상부 본부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