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담론]김형찬/'과학의 세기' 神은 안죽었다

  • 입력 1999년 10월 11일 18시 39분


컴퓨터엔지니어 등 대부분 첨단기술직 종사자인 신도들이 집단 자살해 97년 봄을 떠들썩하게 했던 미국의 종교집단 ‘천국의 문’. 데미안 톰슨의 ‘종말(The End of Time)’에 따르면 신도들은 자살 직전 똑같이 영화를 보고 각자 좋아하는 패스트푸드를 먹었다. 보통 때와 다름 없이 행동했던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을 구원하러 올 UFO(미확인비행물체)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외쳤다. 인류가 봉착한 과학기술의 한계를 인류 스스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외계인의 진보된 과학기술로 불확실한 인류의 미래를 해결해야 한다고 믿었다. 아직 외계인은 과학적 개념이 아니다.

★ 'UFO 신앙' 세계적 유행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첨단기술자와 영성(靈性)의 만남. 그러나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일어난 것이다.

이밖에도 이런 유형의 ‘UFO신앙’은 전세계에 유행하고 있다.

신도 80만의 일본 종교 ‘세계구세교’는 탁월한 예술이 영혼을 정화하고 영성을 높여 행복을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이들은 미술관을 세운다.

이런 와중에 미국 배우 리처드 기어는 지난해 말 “2년내에 배우를 그만두고 승려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16, 17세기 과학혁명 이후 과학적 합리성은 종교의 신비성을 금세 몰아낼 듯했지만 21세기를 바라보는 지금 그 가능성은 도리어 희박해지고 있다.

▽‘불’을 가진 인간〓인간은 ‘프로메테우스에게서 불을 전해 받은 후’ 더 이상 신에게 굽신거리려 하지 않았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은 자연을 지배할 힘과 자신감을 확보해 왔다.

★ 기술진보에 대한 신뢰 깨져

칼 마르크스는 종교를 ‘민중의 아편’으로 규정했고 프리드리히 니체의 짜라투스투라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종교는 세상의 종말이 오기 전에 홀로 종말을 맞을 것만 같았다.

과학기술은 승승장구하며 종교의 영역을 접수해 갔고, 인류를 삶의 고통에서 구원할 것은 종교가 아니라 과학기술이라는 믿음이 사람들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종교가 함락됐다는 소식은 20세기가 끝나가도록 들리지 않는다.

▽신성함의 경험과 자기 초월〓루마니아 출신의 종교학자 머티아 엘리아데는 종교를 ‘신성함(聖)의 경험’이라고 정의했다.이는 ‘존재’ ‘의미’ ‘참’과 같이 일상을 초월한 가치의 체험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따르면 이런 종교적 체험은 유아시절 비롯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일종의 집단적 의식(儀式)이다. 프로이트를 비판적으로 계승한 독일의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확실하고 영원한 가치 탐구로 자신을 초월하려는 인간 내부의 욕구에서 종교의 근원을 찾는다.

★현대문명의 불안감 확산

결국 인간이 개별적 존재로서 불안을 느끼는 한 현실적 한계를 넘어 삶의 궁극적 의미를 찾으려는 욕구는 계속되고 이의 해소 기능을 가진 종교는 그 역할을 계속한다. 현대 과학은 생태계파괴 핵무기 유전자조작 등을 통해 불안을 증폭시키는 측면이 있다.

▽종교의 구조조정〓삶의 궁극적 의미는 물질적 욕구충족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오만한 과학기술과 마르크스는 이점을 간과했다. 종교는 함께 고민해 줄 동지들, 잘 포장된 조직과 의식(儀式), 기도나 선 같은 ‘초월의 기술’ 등 세속의 삶에 지친 몸을 던지기만 하면 해결해 줄 것 같은 준비가 돼 있다.

기복신앙(祈福信仰)의 시대를 지나 기도하지 않아도 먹고 살 만해 진 시대. 다양한 기호에 따라 초월의 방법도 달라진다. 거대 종교는 여전히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신자가 줄어드는 현상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편 군소 종교는 계속 생겨나고 있다. 기호 변화에 따른 종교의 구조조정이 시작된 것이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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