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갈팡질팡하는 의보통합

  • 입력 1999년 10월 11일 18시 39분


정부 여당이 당초 내년 1월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던 의료보험 통합을 다시 6개월간 연기하기로 한 데는 이런저런 사유보다는 의보통합이란 ‘골치아픈 이슈’를 일단 내년 4월 총선 이후로 미뤄두고 보자는 ‘정치논리’가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노총 직장의보 등은 이미 이번 국회에 514만명의 국민서명을 받아 의보통합의 2년간 연기를 요구하는 청원을 내놓고 있어 특히 집권여당으로서는 ‘봉급자의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정부는 이번 국회에 제출된 관련 개정법안의 처리가 미루어지고 있어 내년 1월1일부터 통합법을 시행하기에는 실무적으로 시간이 촉박하고, 직장의보의 비협조로 통합추진업무가 제대로 추진되지 못한다는 등의 통합연기 이유를 들고 있다.

의보통합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대선 공약사항으로 지난해 2월 제1기 노사정위원회에서도 합의된 사항이다. 금년 2월에는 ‘국민건강보험법’을 제정하고 2000년 1월 전면통합 방침을 확정했다. 그러나 7월에는 재정통합을 2년간 연기하기로 했다가 이번에 다시 조직통합마저 6개월 연기하기로 했으니 하나의 정책이 1년도 안돼 세 차례나 바뀐 꼴이다. 나름의 사유야 어떻든 충분한 검토와 준비없이 서두르다가 실패를 거듭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런 마당에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가 설득력이 있겠는가.

의보통합의 명분은 의료보험 가입자가 자영자든 봉급자든 공무원이든 같은 소득에 같은 보험료를 내게 해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을 기하는 한편 고소득자가 저소득자의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사회복지적 소득재분배 효과를 보자는 데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명분은 자영자의 소득파악률이 23% 수준인 현실에서는 당장 ‘봉급자가 봉이냐’는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 문제가 불거지고 나서야 지역과 직장간 재정통합을 연기하는 등 보완에 나섰으나 직역(職域)간 불만요인은 여전한 상태다. 결국 현실적합성 없이 명분만 앞세운 정책이 거듭된 시행착오와 혼란의 원인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차제에 보다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내놓고 국민의 이해와 협조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본다. 6개월을 연기한다고 사정이 크게 나아질 것이 아니라면 시한에 급급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소득파악을 위한 조세체계를 재정비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 아울러 책임있는 정부, 책임행정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행여 이번의 통합연기가 내년 총선은 넘기고 보자는 정부 여당의 ‘얄팍한 속셈’이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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