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단신으로 가볍게 처리했지만 이건 매우 중대한 문제다. 우선 법률관계를 보면 현행 국가보안법으로는 북한 방송 청취를 처벌할 수 없다. 이 법 7조가 북한을 찬양하기 위해 거기서 보고 들은 내용을 남에게 전파하는 것만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도 막을 방법이 없다. 위성 안테나만 달면 누구나 안방에서 볼 수 있다. 그걸 보고 북한의 선전선동에 넘어갈 사람이 생길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시민들의 안방까지 들여다보고 가족과 이웃이 서로를 고발하게 하는 감시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민주공화국’에서 이게 가능한 일일까? 가능하다고 해도 거기 들어가는 천문학적 비용은 과연 누가 부담할 것인가?
국가보안법을 강화할 수는 없다. 감시체제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다. 법률과 기술 두 가지 면에서 막을 수 없다면 해답은 하나밖에 없다. 허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안전보장회의는 망설이고 있다. 두 가지 고민이 있기 때문이다.
첫번째 고민은 일상적 부정부패와 사회적 불평등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약점과 그늘을 북측이 비난하고 공격한다는 데 있다. 약점을 찌르는 데 아프지 않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누가 후벼 파지 않는다고 해서 있는 약점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북한이 찌르지 않아도 우리는 스스로 그 문제들을 고쳐 나가려고 한다. 또 우리 사회의 약점은 우리 국민이 북한의 선전선동 전문가들보다 더 잘 안다. 게다가 북한의 소위 ‘우리식 사회주의 혁명’으로 그것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러니 그 고민은 국민을 믿고 접어두는 게 좋겠다.
두번째 고민은 지금까지 우리 정부도 북한에 대해서 진실만을 말한 건 아니라는 데서 나온다. 아무리 흉악한 질서를 가진 사회라도 한두 가지 비교우위는 있게 마련이다. 예컨대 북한의 금강산 관리요원들은 우리의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보다 훨씬 엄격하게 자연보호 규정을 집행한다. 금강산은 분명 한라산이나 설악산보다 깨끗하다. 북한 방송을 보다 보면 그와 비슷한 장점을 여러 가지 발견하게 될 것이다. 국민이 북한 사회가 반세기 동안 우리 정부와 공안기관이 말한 것만큼 고약한 사회는 아니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고민 역시 잊어버려도 된다. 이데올로기적 군사적 대치상태에 살다 보니 부득이 과장을 좀 했다고, 우리도 정보가 부족했다고, 본의는 아니었다고 해명하는데 배신감을 토로하고 화를 낼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
국가안전보장회의 관계자들에게 간곡히 권한다. 국민의 양식을 믿으시라고. 일당독재와 중앙통제식 계획경제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광신 가득한 육성과 그들이 만든 끔찍한 방송 프로그램을 가감 없이 그대로 보고 듣는 것이야말로 다양성을 인정하는 민주주의와 분권적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을 키우는 최상의 방법이다.
검찰이 공소보류로 석방한 ‘주사파 간첩’ 김영환과 조유식의 ‘반성문’을 보라. 한때 주체사상을 추종했던 그들을 ‘북한혁명가’로 전향시킨 것은 통제와 금지가 아니었다. 자기 눈으로 본 북한 사회의 참상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북한의 최고권력자 김일성이 그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북한 위성방송도 같은 효과를 낼 것이다.
유시민(시사평론가) denkmal@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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