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국내 SW산업 "돈없고 백없고 시장없다"

  • 입력 1999년 10월 11일 19시 33분


경기회복과 함께 인터넷 컴퓨터서비스 등 정보산업분야가 급속한 성장을 보이고 있지만 정작 핵심부문인 소프트웨어 개발분야는 거의 고사(枯死)상태여서 긴급대처가 절실하다.

이 분야의 투자와 국내시장은 되레 줄어드는 추세고 소프트웨어 개발인력도 해외업체의 스카우트 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갈수록 시들어가는 국내 소프트웨어산업의 실태와 원인, 향후 전망과 대책 등을 집중 추적한다.

★왜 소프트웨어인가

소프트웨어산업은 ‘정보산업의 근간’인 동시에 무한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산업. 실제 ‘소프트웨어의 공룡’으로 불리는 마이크로소프트(MS)사는 단 1종류의 OS(운영체계)프로그램으로 세계시장을 점령했다.‘윈도98’은 전세계적으로 4500만개가 팔려 MS사에 무려 50여억달러를 안겨준 것. 대표적인 데이터베이스(DB) 소프트웨어인 ‘오라클8i’로 오라클사가 145개국에서 벌어들이는 소득도 매년 수십억달러 규모다.

한국소프트웨어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정보산업분야의 매출총액은 3742억달러로 웬만한 국가의 총소득과 맞먹는 규모이며 이중 소프트웨어 분야는 1320억달러로 3분의1을 넘는다.

★국내업계의 실태

“돈 없고 ‘백’ 없고 시장 없고 인재 없다.” 소프트웨어 개발업자 L씨가 전하는 우리나라 소프트웨어산업의 실상이다.

세계적으로는 소프트웨어 개발 붐이 일고 있지만 국내서는 되레 사양길이라는 것. 국내 소프트웨어산업 분야의 연간 매출액은 1조2791억원. 전 세계 매출액의 1%도 안된다. 게다가 전체 정보산업 매출액(5조3371억원 가량)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0%에 불과하다. OS와 DB, 사무자동화(OA), 인트라넷 등의 분야에서 외국계 제품과 겨룰 수 있는 것도 거의 없다.

서울 강남지역에서 ‘그룹웨어’를 개발하던 M사의 B씨는 8월 사업을 접어야 했다. 지난해 10월 9억원을 투자했던 투자자가 “인터넷 분야에 투자한다”며 투자금과 장비를 모두 회수했기 때문. 소프트웨어업계의 ‘돈가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 소프트웨어 개발분야는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불황을 맞고 있다. 투자자들이 너도나도 인터넷 분야로 몰리면서 ‘인터넷 거품’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기관을 비롯해 창업투자회사 벤처투자집단 등 200여개 기관의 투자 중 소프트웨어업체에 떨어지는 몫은 상당히 낮다.

시장상황도 어느 때보다 열악하다. 대기업 비중이 갈수록 높아져 매출액 기준으로 전체 시장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68%로 역대 최고를 기록할 전망이다. 여기에 불법복제품이 여전하고 대기업체의 후려치기식 가격책정과 외국제품의 시장장악도 여전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소위 ‘잘나간다’는 업체마저 속속 개발에서 손을 떼고 있다.

‘아래아한글’의 ‘한글과컴퓨터사’마저 “개발로 버티기는 힘들다”며 ‘소프트웨어 유통’을 주업종으로 하고 있다.

★향후전망과 대책

업계에서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바로 ‘소프트웨어의 식민지화’다. 당장의 생존 때문에 기술개발보다 매출신장을 위해 요즘 업체들이 선택하는 방법은 ‘소프트웨어 용역’. 기존제품에 몇가지 기능을 추가해 신제품을 내놓거나 대기업의 ‘하청’을 받아 ‘작업’하는 게 고작이다.

소프트웨어산업연합회에 등록된 소프트웨어관련업체는 올해 1977개로 지난해(1700개)보다 늘었지만 대부분 기존 소프트웨어에 일부 기능을 부가하는 ‘소프트웨어 용역’에 불과할 뿐 개발업체는 210개뿐이다.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자금난에 허덕이다 보니 자금을 알선한다는 ‘브로커’들도 최근 활개친다. 자동화프로그램을 개발중인 C씨는 올초 1억원의 정부자금을 받는 대신 무려 1200만원을 브로커에 넘겨줬다. C씨는 “브로커가 신청에서부터 보증까지 전과정에서 로비를 해 연리 6%로 1억원의 은행대출을 받았다”고 말했다.

유능한 개발인력도 속속 외국기업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80년대 중반 컴퓨터를 익힌 소위 ‘컴퓨터 1세대’ 김모씨(37)는 “현재 국내업체에 남은 제1세대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실제 마이크로소프트와 유니시스 등 한국에 진출한 외국기업이 최근 2년간 특채한 인력은 예년의 3,4배에 이른다.

개인정보관리 소프트웨어개발업체인 ‘엔드리스레인’의 대표 이호찬씨(28)는 “인터넷과 달리 소프트웨어분야는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한데도 당장의 이익 때문에 소홀히 하다간 소프트웨어 후진국의 오명을 영원히 벗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컴퓨터1세대’ 김씨는 정부의 각성을 촉구했다. 김씨는 “말로만 벤처를 부르짖지 말고 과감한 세제혜택과 인력개발 등에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며 “정부기관이 국산 소프트웨어를 도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김상훈기자〉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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