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은 의식 깊숙한 곳까지 자리잡게 되어 모든 시선은 안쪽으로만 집중되게 되었다.
이른바 內傾的(내경적)인 태도다. 그 결과 客觀的(객관적)인 지식추구는 발달하지 못한 대신 主觀的(주관적)인 攄得(터득)에는 뛰어나게 되었다. 서양에 비해 과학은 뒤지지만 철학의 깊이는 훨씬 더하다. 이런 경향은 자연히 안을 중시하고 바깥을 경시 내지 배척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바깥을 뜻하는 한자 ‘外(외)’자를 생리적으로 싫어한다. 外자로 이루어진 단어치고 좋은 뜻을 가진 단어가 많지 않다.
예를 들어보자. 外家(외가)니 外孫(외손)은 아무래도 本家(본가)보다는 가벼운 느낌이 든다. 그런 관계를 통틀어 外戚(외척)이라고 하는데 그것처럼 나쁜 의미로 쓰이는 단어도 없을 것이다. 중국에서는 外戚이 설쳐 나라까지 망하게 했던 쓰라린 역사가 있다.
또 ‘남의 나라’라면 응당 他國(타국)으로 불러야 할 것을 外國(외국)이라고 부르며 그 사람도 他國人이 아닌 外國人이라고 부른다. 또 다른 나라의 적군을 外寇(외구), 그들이 일으킨 난을 外患(외환)이라고 했다.
자연히 대문을 사이로 문밖과 문안의 차이는 엄청났다. 각기 한자로는 門外(문외), 門內(문내)라고 했는데 門外가 좋은 뜻일 리 없다. 내 지붕의 눈을 쓸지언정 문밖의 쓰레기는 본체 만체 한다.
그 문밖에 있는 사람이 門外漢이다. 어떤 사물이나 사안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중국 사람들은 專門家(전문가)를 內行(내항)이라고 하는 반면 門外漢을 外行(외항)이라고 부른다. 역시 안팎의 구별에 따른 결과다. 그러나 이제는 오히려 바깥으로 신경을 써야 할 때다. 門外漢(?)이 중시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chungsw@ma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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