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민 주머니 돈 '훔치기'

  • 입력 1999년 10월 12일 18시 42분


정부 청사에 근무하는 공무원의 일부는 별스러운 수단으로 시간외 근무 수당을 타낸다는 보도다. 러시아워를 피해 아예 새벽에 사무실에 도착, 시간체크기에 타각(打刻)하여 ‘조출(早出)’로 해놓고 목욕이나 운동을 한 뒤 남들의 정상출근시간에 맞춰 책상앞에 앉는다. 저녁에도 청사 부근에서 식사하고 한잔하거나 한 뒤 다시 들어와 퇴근 입력을 하면 ‘야근’이 된다. 이렇게 해서 시간당 4000원 안팎의 시간외 수당이 생기고 한달이면 20만원 정도를 더 타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소수이고 대단한 액수가 아니라고 지나쳐 버릴 일이 아니다. 공직 일부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드러내는 심상치 않은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당사자는 아무런 죄의식 없이 ‘공짜같은 나랏돈’에서 시간외 수당을 더 타쓰기로서니 무슨 큰 문제랴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야말로 공직기강의 위태로운 단면이 아닌가.

더욱이 이런 일이 전국 곳곳에서 오래 전부터 벌어져 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어디 공직 말고 사기업에서 그런 터무니없는 ‘시간 훔치기’나 공금 빼쓰기가 몇년째 통한다고 상상이나 할 수 있을 것인가.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공적 재원을 공짜처럼 마구 쓰는 모럴 해저드는 각종 공단 등의 조직에서도 엿볼 수 있다. 사학연금공단 교원공제회 같은 데서 한해 판공비(辦公費) 기밀비 명목의 돈을 8000만원에서 1억원 가까이 쓰는 사실이 국정감사 자료에서 나타나 보도되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자원재생공사 환경관리공단 같은 데도 한해 7000만원 정도의 판공비를 쓰고 있다는 집계다. 각 조직이 하는 일만 보아서는 ‘공무를 수행하는 데 드는’ 판공비가 그렇게 많이 필요한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공단 등의 퇴직금 지급은 ‘주인없는 돈잔치’ 같아 줄잡아 사기업의 2배 이상에서 4배에 이른다. 마사회의 경우 한 퇴직간부에게 퇴직금 2억6900만원에다 명퇴금 2억6300만원을 합쳐 5억3200만원을 주어 내보낸 사실이 국회에서 지적되기도 했다.관광공사의 한 퇴직간부는 6억500만원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도로공사의 지난해 퇴직자 가운데 3억원 이상 받은 이가 211명, 4억원 이상이 43명, 5억원 이상도 12명에 달했다. 수자원공사의 퇴직금은 평균3억5400만원, 무역진흥공사의 그것도 평균 2억8600만원이었다. 이러한 크고 작은 씀씀이의 비효율과 낭비요소를 시정하고 공직의 모럴 해저드를 바로잡는 것이 바로 개혁의 목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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