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추적/가두시위]길막고 권리주장 시민은 속터져

  • 입력 1999년 10월 12일 19시 32분


“행진 등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는 건 민주시민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수천명의 시위대가 도로를 건너는 동안 버스안에 서서 몇십분씩 기다리다 보면 짜증이 극에 달합니다.”(회사원 윤성욱씨·35·서울 성북구 돈암동)

올들어 시민사회단체나 노동단체의 가두행진이 급증하면서 이로 인한 교통체증으로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도로 무단점거, 투석 등의 불법 폭력시위는 거의 사라졌지만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와 가두행진이 이어지면서 몇시간씩 주변 교통이 마비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실태

10일 오후 2시경 서울 종로구 종로3가 탑골공원에서 민족정신수호 범국민집회를 마친 50여개 시민사회 단체회원 6000여명이 가두행진에 들어갔다. 시위대는 종로3,4가를 거쳐 동숭동 마로니에공원까지 행진했다.

경찰은 동대문운동장→종로2가 방면 2개 차로를 시위대에 내주었고 이 때문에 심각한 교통체증이 빚어졌다. 또 시위대가 길을 건널 때마다 횡단보도 신호등의 보행시간이 10분 이상으로 늘어나는 바람에 교차로마다 회전, 직진하는 차량들로 뒤엉켰다.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는 등의 불상사는 없었지만 행진이 끝난 오후4시경까지 종로 일대의 교통은 거의 마비상태였다.

서울지역의 경우 올들어 시위대는 ‘탑골공원 집회→중구 명동까지 행진’ ‘종로구 광화문빌딩 앞 집회→종로 행진’ 등 대로를 횡단하는 코스를 많이 택하고 있다.

이 경우 수천명이 길을 건너다 보면 수십분씩 차량통행이 차단되기 일쑤다. 바로 옆에 지하도가 있지만 시위대가 지하도를 이용해 길을 건너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대부분의 집회가 토요일 오후에 열리다 보니 귀가길에 오른 중고생 직장인들이 붐비는 시내버스안에서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경찰 집계에 따르면 올들어 9월 말까지 서울 도심에서는 모두 4238건의 집회가 열렸다. 참가인원은 162만5300여명.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2806회 72만8000명에 비해 집회건수는 1.5배, 참가인원은 2.3배 가량 늘어난 것. 올해 집회후 가두행진을 벌인 경우는 집회허가건수의 30%로 집계됐다.

★대책

각 이익집단이 집회 및 가두행진을 벌이는 것은 당연한 권리행사. 그러나 권리의식에 비해 남에게 끼칠 불편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경찰서의 교통과장은 “사전에 행진코스 등에 대해 신고를 받으면서 가급적 교통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코스를 택하고 길을 건널 때는 지하도를 이용하라고 권하지만 주최측이 협조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찰의 대응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시위대가 당초 신고했던 내용을 지키지 않아도 경찰이 원칙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밀려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

이에 대해 한 경찰 간부는 “밀고 당기다 보면 오히려 교통체증이 심해져 어쩔수 없이 차도를 내주고 신호도 잡아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론 선진국에서도 대규모 가두행진이 벌어지면 교통체증이 빚어지지만 우리처럼 교통흐름이 완전히 끊기는 경우는 드물다. 미국 보스턴 등에서 가두행진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는 한 대학교수는 “시위대도 보행신호를 지켜 길을 건너며 만약 폴리스라인을 어길 경우엔 경찰의 대응이 엄격하다”고 말했다.

교통문화운동본부 박용훈(朴用薰)대표는 “경찰이 시위대를 마찰없이 빨리 통과시킨다는 측면만 중시하다보니 교통흐름이 끊기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시민사회단체도 행진시 지하도 육교 등을 이용해 교통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야만 오히려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기홍·이명건기자〉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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