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 (247)

  • 입력 1999년 10월 17일 18시 48분


그래, 팔십오 년 가을 쯤이었을 거야. 그전 해부터 정치범 장기수들에게도 귀휴와 사회참관이 시작되었으니까. 사회에서의 폭압도 유화국면으로 바뀌었듯이 그 무렵부터 전향 제도가 폭력에서 회유로 전환되었다. 선배들은 칠십년대에 지도를 맡은 폭력배들에게서 고문을 받으며 죽어 나갔고 버티던 이들도 여러 사람이 자살했다. 나는 구치소에서 교도소로 넘어가자마자 먹방에 갇히기도 하고 개밥을 먹기도 하면서 전향 공작에 시달렸다. 예전의 공작반은 이름만 전담반으로 바뀌었고 교무과와 보안과가 서로 경쟁적으로 성과를 올리려고 우리를 달달 볶았다. 공안수든 시국사범이든 간첩 조작 사건이든 이른바 집시법 사건이든 가리지 않고 머릿속의 사상을 바꿀 것을 끈질기게 강요했다. 요즈음 뱃속을 관찰하는 투시기가 나온 것처럼 머리에다 대고 비추어 보면 붉고 푸른 색깔이 판명되는 기계라도 발명해야 할 판이었다. 내가 빨갱이인지 퍼랭이인지는 나도 잘 몰랐다. 나는 이 땅에서 무력으로 양민을 학살하고 독재 정권을 잡은 일부 군부와 그에 붙어서 온갖 이권과 특혜를 누려온 독점자본을 반대했다. 유신 시대와 오월의 학살을 겪으면서 나와 타자를 알게 되고 여러번의 좌절감에 시달린 젊은이들은 북쪽이 타자가 아니라는 너무도 뻔한 사실에 눈을 떴다. 육십년대에는 가지고만 있어도 사형이라던 문건들이 바다 밖에서 들어왔는데 숨을 죽이고 그런 자료들에 접하기 시작한 게 팔십년대 초반의 일이다. 동우가 그런 자료들을 모으고 내부 문건에 반영했던 것은 좌경이었을까. 내가 줄곧 감옥에 있으면서 세상이 바뀌어 갔던 길을 돌이켜보면 그런 따위는 차츰 보편적으로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되어갔다. 그것 봐라, 별 일도 아니었잖아.

나는 교회사와 논쟁을 벌이고는 했다.

여보쇼, 내가 몇번이나 말했소. 나는 간첩이 아니오. 그건 누구보다도 당신네가 잘 알지 않소.

종이때기 한 장 가지고 뭘 그래. 눈 딱 감고 지장만 꾹 누르면 대번에 처우가 달라질텐데.

당신은 정말 종이때기 한 장 가지고 뭘 그럽니까. 내가 저쪽 사상을 가진적이 없는데 어디서 어디로 돌아선단 말이오. 오히려 내가 빨갱이라는 걸 인정하고 독재정권의 폭력을 합법화 해달라 그 얘기요?

그들은 직접 나서는 것이 별로 성과가 없다고 생각하고는 외부 사람들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면회도 시켜주지 않던 가족들이 찾아와 애걸하고 간 뒤에는 폭력배들을 시켜서 괴롭혔다. 다음에는 각 종교 교파마다 교인들을 동원해서 결연을 시켜 주었다. 이제는 일반수들의 교화에 자원봉사 식으로 진행이 되어 훨씬 다행스런 일이지만 전에는 주로 정치범이 그 대상이었다. 그들은 먹을 것을 한 보따리씩 해가지고 와서 우리를 차례로 불러내어 먹였고, 직계가족의 편지도 몇백자라고 한정하고 사흘 뒤에는 그도 압수하여 영치시키던 것과는 달리 사흘이 멀다하고 정치범 개개인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용은 종교적인 것과 머릿속을 바꾸라는 사연이었다. 하여튼 나는 몇 차례 시달리지 않아서 방침이 바뀌었으므로 선배들 보다는 괴로움이 훨씬 빨리 지나간 셈이었다.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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