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D호텔 기획실의 입사 6년차 김모씨(30·여)는 얼마전 I상사에 다니는 여동생(27)과 100만원대의 ‘셀린느’브랜드의 핸드백을 샀다.
김씨의 월수입 130만원, 동생은 150만원. ‘과소비(過消費)’라고 손가락질을 받을 만한 행동. 그는 그러나 당당하다. “업무를 하면서, VIP를 만나거나 행사에 참가할 때, 셀린느가 필요한 때가 있다.”
핸드백 한 개를 사기 위해 열달간 돈을 모았다는 김씨는 물건담는 백을 산 게 아니다. ‘셀린느’라는 이름이 주는 호화스러움, 이 물건을 들었을 때 달라지는 주위의 대접을 구입한 ‘과소비(誇消費)’를 했을 뿐.
▼샤넬족은 누구?
마릴린 먼로가 ‘입고 잤다’는 향수 샤넬 No.5. 고급브랜드의 상징인 샤넬의 이름을 딴 ‘샤넬족’은 마케팅전문가들 사이에서 특정 브랜드 이미지를 선호하는 20대∼30대 초반의 직장여성과 주부를 일컫는 말이다. 경제적으로 자립, 부모에게 도움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렌지족과는 다르다. 마케팅관계자들은 이 나이대 여성의 절반이상은 ‘잠재적 샤넬족’이라고 본다.
샤넬족의 라이프스타일과 브랜드자산 평가에 대해 연구중인 삼성경제연구소 신현암 수석연구원(경영전략실)은 “새 밀레니엄의 키워드는 페미니즘과 디지털문화”라고 전제, “샤넬족은 이 두가지 특성을 한 몸에 지닌 계층이라는 점에서 특히 기업에서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능의 소비→상징의 소비
샤넬족은 물건의 기능을 사는 것이 아니라 상징을 소비한다.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시대, 소비자들의 물질적인 욕구는 이미 해소됐다. 남은 것은 이미지에 대한 욕구일 뿐. 그들이 브랜드에 집착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어려서부터 CF의 세뇌를 받으며 자란 샤넬족은 ‘맥주’보다 ‘라거’라는 말을 들을 때 입에 침이 고인다. H연구소 비서실 김모씨(29)의 핸드백 속에는 언제나 에스티 로더 립스틱이 들어있다. “돈이 없어서 에센스는 못 산다. 그러나 에스티 로더를 갖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 립스틱은 꼭 하나씩 쓴다.”
인터넷 여성정보제공업체 ioi커뮤니티(www.iolady.co.kr)사이트의 패션정보란에서는 100만원 이하의 핸드백은 소개하지 않는다.
김도연사장. “샤넬족은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며 살기 때문에 충동구매는 안한다.옷도 입어보기만 하고 사지 않는 윈도쇼핑을 두달쯤 한 뒤에야 유명브랜드의 이월상품을 산다. 그러나 이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여전히 100만원짜리 핸드백이다. 브랜드 이미지를 중시하니까.”
▼샤넬 트렌드
신한종합연구소 사회경제팀 박영배팀장은 ‘귀족체험’으로 샤넬족의 심리를 설명한다.
슬쩍 고개만 돌려도 루이뷔통 핸드백을 들고 에쿠스 자동차를 탄 '귀족'이 보이는 세상. 그들처럼 살고 싶지만 마음 뿐. 작은 립스틱 하나, 열달간 돈을 모아서 산 핸드백을 쓸 때 만큼은 부러울 게 없는 ‘찰나적 부’를 체험할 수 있다. 진짜를 살 수 없다면 ‘진짜같은 가짜’라도 사든가….
신연구원의 얘기. “귀족적,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원하지만 샤넬족은 ‘백마탄 왕자를 기다리는 신데렐라’는 아니다. 그들은 자기힘으로 성취하는데 자부심을 갖는다.” 그 성취가 물건의 소유이든, 사회적 지위든, 아니면 자아실현이든 이들은 지극히 적극적, 현대적, 그리고 자본주의적이라는 분석.
여성으로서의 자기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필요한 정보만 선별해서 받아들이는 샤넬족. “난 그럴만하니까요!(I’m worth it!)”라는 외국브랜드 화장품의 CF문구대로 그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가치와 스스로를 동일시하며 살기를 원하고 있다.
〈나성엽기자〉news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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