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부터는 수능이 자격시험 형태로 변화하고, 대학이 다양한 기준을 설정해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된다. 대학의 자율성을 강화하고 수험생의 자질을 여러 관점에서 비교평가하는 선진화된 개혁임에 틀림없다. 모든 대학이 동일한 잣대를 사용하는 경직된 제도와 비교하면 엄청난 변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제도의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이나 시행과정의 혼란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일선 학교에서 겪는 과도기적 혼선은 과거보다 더 심각하다.
교육개혁의 절박감은 대학입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관련 법규의 개정을 요구하는 시위와 BK 21을 둘러싼 잡음도 계속되고 있다. 새 천년의 문턱에서 지식 정보화시대를 지탱하는 국가 역량이 교육에 달려있다. 어떤 규모의 자본투자로도 창의성과 전문성을 갖춘 인재 하나를 대체할 수 없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지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국민경제의 잠재력이 자본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전문가의 창의성에 의해 좌우된다. 미국이 글로벌 시대에 모든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한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시장경제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강조하는 교육제도이다.
이런 관점에서 동아일보가 지난 주부터 연재를 시작한 ‘美 교육 이래서 강하다’는 막연히 알면서도 구체적으로는 파악하지 못했던 선진교육의 실상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생동감 있는 현장을 보여준다. 고등학교 교육의 다양한 ‘선택과 집중’이 어떻게 운영되고, 학부모의 학교운영 참여, 90만명의 도시가 연 2조원을 초중고 교육에 투자하는 현실 등 언젠가는 우리가 좇아야할 먼 나라의 얘기를 가깝게 들려주고 있다. 과연 우리가 그들과 경쟁하며 도약할 수 있을 것인가? 전 대학을 요란하게 한 ‘BK21’ 예산은 미국 한 도시의 교육예산에 불과한 수준 아닌가.
동일한 교육개혁 문제를 다루면서도 ‘새 대입제도 표류우려’(14일자 1면)는 독자의 혼란만 가중시킨 내용이었던 것 같다. 어렵게 만든 새 제도가 차질없이 시행돼야 한다는 의지는 읽을 수 있었으나, 기사에 인용된 개혁안에 대한 비판이 큰 파장을 불러올 만한 실질적인 내용이 적었다. 새로운 정보나 보충설명도 없어 1면에 실리는 기사로서는 무언가 부족한 허전한 느낌을 갖게 했다. 적어도 1면이라는 지면 가치에 상응하는 새롭고 풍부한 내용이 뒷받침됐어야 했다. 몇줄 제목으로 독자를 유혹하기 보다는 풍부한 내용이 표제를 압도할 수 있는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
탈북 난민들의 대책을 다룬 ‘집중추적’(15일자)이나 경성그룹의 비리관련 피고인을 검찰이 239회나 불러 조사한 사건의 사설(16일자)은 모두 소외된 사람들의 인권을 다룬 기사로 돋보였다. 노근리 사건의 진상조사를 다짐한 미 국무부 로스 차관보와의 인터뷰 기사(15일자)나 재미 교포의 스파이 의혹사건을 크게 조명했던 기사들도 같은 맥락에서 평가될 수 있다. ‘국경없는 의사회’처럼 소외된 계층의 인간적인 삶을 소중히 여기는 ‘글로벌 휴머니티’를 강조하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갑영(연세대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