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에 따르면 러시아는 ‘신 군사독트린’을 준비중이며 이 독트린에는 “재래식 전력에 의한 침략을 받을지라도 자국과 동맹국의 안전을 위협할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권리를 가진다”는, 이른바 핵선제사용권을 분명히 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적이 핵무기를 사용할 때에 한해 핵무기로 대응한다”는 지금까지의 핵 정책과 다르다. 러시아가 이처럼 핵무기사용에 관한 개념을 전환하려 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최근 유고나 체첸사태로 심각히 대두된 안보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러시아로서는 냉전체제 붕괴 이후 자국 국경까지 확대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세력을 피부로 느낄 법도 하다. 여기에 냉전체제 붕괴 이후 유일 초강대국이 된 미국에 대한 군부의 반발의식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미 상원이 CTBT 비준안을 거부한 마당에 러시아까지 핵선제사용권을 공식 선언한다면 이미 핵개발에 손을 대고 있는 일부 국가들은 더욱 노골적으로 핵 프로그램을 추진할 것이 뻔하다. 여타국가도 상당수 핵개발에 대한 충동과 유혹을 느낄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우리는 “CTBT체제가 각국의 핵실험을 차단하기는커녕 오히려 미국의 핵전력만 약화시킬 뿐”이라는 미 공화당측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은 강대국의 자국 이기주의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받아도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러시아 역시 핵선제사용권을 선언한다면 그와 똑같은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우리의 경우는 핵문제에 한층 민감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북한의 핵문제가 가까스로 봉합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핵무기 개발 경쟁은 인도와 파키스탄 등 지구촌 곳곳에서 이미 노골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미국이나 러시아가 스스로 모범을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다른 나라의 핵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할 명분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지금의 세계핵질서는 기존 핵강국들의 기득권만 보호해 주고 있다는 비난이 적지 않게 일고 있는 중이다.
지구촌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서는 어떻게 하든 냉전시대와 같은 핵 경쟁은 피해야 한다. 그 일차적인 책임은 세계핵무기의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에 있다. 두 핵강국의 자발적인 핵 억지 노력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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