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249)

  • 입력 1999년 10월 19일 18시 52분


철사를 에스 자로 구부려서 말여 혁대에다 차고 근무를 나온다고. 졸리면 복도쪽 철창에다 갈고리를 걸거든. 그러고 창살에 기대서서 무조건 자는 거여. 순시자가 나타나는 발자국 소리만 들리면 얼른 갈고리를 빼내고 잠을 깨려고 왔다 갔다 하는 거지. 근무하다 본께 여그 교무과 사복근무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더라고. 야근이 있나 점검이 있나 그러고 민간인들이랑 자주 만나고 말여. 빨갱이들 순화하는 직함이라고 허니 애국하는 길도 빠르고. 전에는 사상에는 사상이다 해서 모두들 교무과 직원은 기독교인 우선이었지. 내가 그래서 통신강의록으로 야간 신학교를 안나왔냐. 주임 시험도 보고. 내 시방 신학대학원 다니면서 강의도 나간다 이거여. 나도 저쪽 비판서를 신물이 나도록 읽었응께 앞으로는 내 앞에서 문자들 쓰지 말란 말여.

계장은 나를 대기실 안쪽에 있는 자기 방으로 불러들였다.

오형 잠깐 나하구 얘기 좀 합시다.

그곳은 두 명의 계장이 함께 쓰는 방이고 다시 그 안쪽에는 부소장격인 교무과장실이었다. 그는 나를 자기 책상 옆의 안락의자에 앉히고나서 인심이라도 쓰는 듯이 물었다.

여기 오셨은께 오랜만에 차 한 잔 드셔야제. 뭘 드시까, 어이 소지여 여그 뭔 먼 차가 있냐?

그가 교무과에 나와 있는 봉사원을 불러 물었다. 중부지역의 절도범이기 십상인 소지가 눈치 빠르게 대답했다.

예예 계장님. 교무 다방에는 없는 차가 없구먼유. 예, 전통 차로는 녹차 인삼차 유자차 둥굴레차 율무차가 있구유 커피 홍차에다 음료수로는 콜라 사이다에 거시기 원비디까지….

옘병하구 자빠졌네 작것. 먼 차가 그렇게 줄줄이여?

예, 다 사회에서 기증 들어온 거여유. 구매부 지원두 있구유.

멀 드시것소? 오랜만에 커피 한 잔 때레야제.

그럽시다.

아야 여그 커피 한 잔 꾹꾹 눌러서 따따불로 올려라 잉?

하고나서 계장이 갑자기 상반신을 내게로 숙이면서 은근하게 말했다.

오형 나가 오늘 부탁 한나 헙시다. 쪼깨 들어주소. 오늘 우리 동네선 이름 높으신 목사님이 오시는디 특별히 내가 오형을 천거했소.

나는 대뜸 알아 들었다.

교양강좌 말이죠? 실적 올리고 동향 보고하고 시간 때우겠다는 얘기 아닙니까.

하이고 그러니 어찌허요. 위에서는 추계 교육을 실시하는 즉시, 결과보고 하라 공문 내레오고 지랄해쌌는디.

학생들은 왜 불렀어요?

오형이야 벨 말씀도 없을 것이고 잉, 애들 보러 소감문 쓰라고 헐텐께.

그 친구들 욕만 잔뜩 쓰고말텐데.

상관없어라우, 내용이야 우리가 고치면 쓴께. 그건 염려없고요 다만 오형에게 부탁헐 말은 목사님 면전에서는 그냥 듣는 시늉이나 해주슈.

나도 농담조로 받게 된다.

맨입으로?

앗다 왜 그래쌌소. 산해진미를 준비해 놨지라. 에,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교육 결과가 중요한 것은… 이거 오형만 알고 있으시오. 시방 심사 중인디, 아매 공안수들한테도 귀휴와 사회참관 처분이 내려질 모양입디다.

내가 계장과의 접견을 끝내고 나오자 이번에는 두 학생들이 불려 들어갔다.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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