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제균/정치권의 일본核 불감증

  • 입력 1999년 10월 20일 18시 29분


니시무라 신고(西村眞悟)일본방위청정무차관의 ‘핵무장 논의’ 발언과 관련해 일본측은 한국 중국 미국 등 관련국 내 여론 악화를 우려한다는 게 현지의 보도다. 그러나 적어도 현 상황만을 보면 한국의 정치권에 대해서만은 걱정을 덜어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20일 외교통상부 당국자의 짤막한 유감 논평이 나왔을 뿐 정치권 어디서도 반응은 전무(全無)했다. 여야는 이날 10여건의 성명과 논평을 쏟아냈으나 국가정보원의 도청 감청 의혹 등 여야 간 비방이 주를 이뤘다. ‘니시무라 발언’과 관련한 내용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이날 여야가 개최한 어떤 회의석상에도 일본의 핵무장 문제는 화제에 끼지 못했다.

‘21세기형 지도자’를 자임하는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이날 국회 대표연설에서도 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을 비롯한 동북아 안보문제에 관한 비전을 찾아볼 수 없었다.

더욱 한심한 일은 국정원의 도청 감청 공방에서 연일 ‘국익(國益)’을 찾는 여당측의 침묵이다. 미국의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비준안 부결 등으로 핵 위협의 수위가 갈수록 높아가는 가운데 주변국의 핵무장 논의 만큼 국익과 직결되는 일이 또 있을까.

외교부당국자는 “망언 수준의 발언에 너무 심각하게 대응할 필요가 없다”면서 “그러나 정치권의 침묵은 또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당국자는 “통상 이런 일은 정치권이 강하게 밀어붙이면 외교부는 내부 여론을 문제삼아 항의와 유감을 전달하는 게 외교의 ABC”라며 “일본은 정치권의 목소리를 빌려 정부의 속내를 드러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당리당략에만 골몰하느라 국가의 거시적인 미래와 국민의 안위를 생각하지 못하는 ‘우물안 정치인’들에게 국민은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 답답하다.

박제균<정치부>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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