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 (250)

  • 입력 1999년 10월 20일 18시 29분


우리는 시간이 되어 특별접견실로 끌려갔는데 팔걸이 달린 푹신한 의자에 회의용 탁자가 있고 위에는 벌써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종이접시 위에는 양념통닭이며 바람떡에 절편에 녹두와 콩고물을 묻힌 인절미에 다과까지 그득하게 차려 놓았다. 먼저 와서 기다리던 노인이 앉은채로 손을 쳐들며 말했다.

어서들 오시오.

인사들 하지 이분이 바로 그 유명한….

아무개 목사라고 계장이 노인을 소개하고 나서 우리를 그에게 인사시켰다. 계장은 일일이 한 사람씩 거명하며 국가보안법이니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이니 하는 것에 대한 위반 내용과 형량, 그리고 잔여 형기를 말해 주었다. 그러고 나서 계장은 고작해야 연사와 청중을 합하여 네 사람 밖에 되지 않는데도 전혀 쑥스러워하지 않고 두 손을 모으고 일어서서 개회사를 하려 들었다.

에 그러면 지금부터 추계 정기 교양강좌를 시작하겄습니다. 강 목사님은 일찍이 전후 시절부터 우리 교정계에서 교화공작 사업에 오랫동안 봉직해 오시면서 수많은 공안수들을 인간적으루다 돌아서게 하셨던 공로자이시며 피도 눈물도 없는 공산주으자들을 따땃한 피가 도는 선량한 국민으로 가르치고 참회하게 만든 애국자이십니다.

아아 계장 그만두라구. 이 사람들 시장할 터인데 우선 음식이나 들라구 합세다. 머 강좌라기보단 거저 허심탄회하게 서루 맘을 터놓구 담화를 나누는 게 더 조티 않가서.

아 예에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화기애애한 시간 보내십시오.

하고 나서 계장은 좀 과장스럽게 학생들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공연히 딴전 피우지 말구 이르시는 말씀 잘 들어.

계장이 나가자마자 키다리가 얼른 인절미 한 개를 집더니 홀랑 입 안에 넣고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회장이 입을 우물거리는 회장의 팔을 툭 치는 시늉을 하자 목사가 말했다.

오 괜찮소. 하디만 거저 간단한 기도나 한번 올리구 듭세다. 자아 기도합세다.

하면서 그가 먼저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는데 두 젊은이는 그냥 멀뚱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며 앉았고 나는 그래도 체면이 있어서 눈은 뜨고 고개만 숙인 자세를 취했다. 목사는 경험이 많았는지 우리의 꼴은 확인하지도 않고 차분하게 기도를 올렸다.

하나님 아바지 오늘 우리가 주의 은총으로 내레주신 마딧는 음식을 놓고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아바지께서 이르신 가족의 소중함을 확인코자 함입네다. 이들은 한때의 혈기와 판단 잘못으로 사탄에 들었으나 오날에 와서는 자기가 속았다는 것을 알고 회개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입네다. 이들이 속은 것은 저들의 잘못이 아니라 주의 십자군들이 멸하고야 말 사탄의 마수에 빠진 것이니 이 형제들을 잘 인도해 주옵소서. 그리고 이 음식을 먹고 지금도 집에서 밥상을 마련하고 비워진 자리를 바라보며 애타게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릴 가족의 정을 깨닫게 하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은총 아래 나라와 부모의 은혜를 뼈저리게 느끼도록 해주시고 하나님 믿음의 자식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소서.

몇 마디 더 하고서 목사가 혼자 아멘을 외운 뒤에 눈을 뜨고 우리를 둘러보았다.

<글:황석영>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