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이 도시를 찾는 관광객 100만명의 절반 가량인 50만명은 순전히 비틀스 때문에 이곳을 찾는다. 98년 발표된 케임브리지 경제영향보고서는 비틀스로 인한 경제 효과가 리버풀시에 매년 500만파운드(100억원)의 수입과 1만8000명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머시강변에서 걸어서 15분쯤 떨어진 ‘캐번 클럽’이 들어선 매튜가는 아예 ‘비틀 스트리트’라는 이름이 붙었다. 비틀스가 270여차례의 공연을 가졌던 캐번 클럽은 경영난에 시달리다 73년 5월 문을 닫은뒤 허물어졌다가 84년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됐다.
맞은 편에는 존 레넌의 동상과 함께 그 옆 벽돌에는 스티브 원더에서 오아시스까지 캐번 클럽을 찾아 공연을 펼쳤던 가수 수백명의 이름이 새겨져 비틀스의 영향력을 실감케 해준다.
하지만 한때 리버풀 최대의 레코드점이었던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NEMS는 여성속옷가게로 바뀐채 사람들 기억속에 잊혀가고 있었다.
머시강변에 자리잡은 ‘비틀스 스토리’에서는 비틀스의 탄생에서 해체까지 모든 역사를 각종 기록영화와 사진으로 살펴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원래 비틀스의 멤버였던 스튜 섯클리프와 피트 베스트의 아이로니컬한 운명도 발견할 수 있다.
베이시스트였던 섯클리프는 비틀스 멤버중 가장 지적인 인물로 초창기 비틀스의 자유롭고 반항적 스타일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그는 미대 진학을 위해 팀을 떠난뒤 62년 4월 뇌출혈로 요절했다.
반면 드러머로 수년간 동고동락을 같이 했던 베스트는 64년 비틀스가 첫 앨범을 취입할 시점에 방출됐다. 방출의 정확한 이유는 지금도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쇼비즈니스계의 냉엄한 요구에 다른 멤버들이 그를 희생시키고 상대적으로 유명세를 타던 링고 스타를 영입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베스트는 실의의 나날을 보내다 이후 직업상담가로서 리버풀에서 상당한 명성을 쌓았으며 최근에는 비틀스 기념공연에서 녹슬지 않은 드럼솜씨를 선보여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리버풀〓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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