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 지원예산이 사이비들에 새나가는 규모가 크면 클수록 정상적 벤처기업들이 지원받을 몫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몰아내는 격이다. 그래서 옥석(玉石)을 잘 가려야 하지만 정부는 그런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지원대상업체에 대한 사전평가체계도, 사후관리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그러다 보니 국민 혈세의 적지않은 부분이 간단한 서류조작만으로 가짜 벤처기업과 브로커들의 배를 불리는 데 흘러든다.
이처럼 폐해가 심해지자 정부는 6월 불법브로커 신고센터를 설치했고 7월엔 벤처기업 확인요령을 개정해 자격요건을 강화했다. 하지만 눈에 띄는 효과가 없다. 오히려 관계 공무원들이 벤처자금 오남용(誤濫用)에 대한 문책을 피하기 위해 문제가 있는 사례도 덮어버린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그 지원자금이 공무원 개개인의 재산이라면 그렇게 관리하겠는가.
근본적으로 2002년까지 벤처기업 2만개를 육성한다는 양적 목표에 매달려 벤처산업의 질적 성장기반 구축을 소홀히 해온 데 문제가 있다. 정부는 벤처기업 육성을 실업대책과 연계시키지만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부실 벤처기업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얼마나 창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벤처기업 수를 늘리기 위해 벤처기업의 범위만 넓혀 한정된 재원을 배분하다 보니 정작 성공 가능성이 높은 유망벤처기업들의 설 자리가 좁아진다.
또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 중소기업청 및 지방자치단체 등이 경쟁적으로 예산을 따내 외형 위주의 지원책을 펴다보니 체계적 종합적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관계부처와 지자체들은 지원의 실효(實效)는 둘째 치고 지원자금 집행실적을 업적인양 내세우는 전시행정의 구태(舊態)를 벗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그간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벤처기업 육성정책을 전면 재점검해 보완대책을 추진하기 바란다. 그리고 범국가 차원에서 벤처기업에 관한 정보네트워크를 구축해 무분별한 지원의 폐단과 부작용을 줄여나가기 바란다. 궁극적으로 진정한 벤처기업들이 시장에 뿌리내려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와 시장여건을 개선하는 데 주력하고, 단기적 직접융자 위주의 지원책을 벤처캐피털에 대한 투자 위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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