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지만원/'나사빠진 공군' 이대론 안된다

  • 입력 1999년 10월 27일 19시 14분


군에는 포기할 수 없는 좌우명이 하나 있다. ‘전투에서 패하는 것은 용서할 수 있지만 경계를 소홀히 해서 패하는 것은 사형감이다’는 말이다. 태만과 기강 해이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뜻이다. 국방의 간성인 군에서 태만과 기강해이로 인해 발생하는 사고와 문제점을 내부적으로 솜방망이로 다스리고 외부적으로 철저히 은닉하거나 축소 조작하는 문화가 뿌리를 내리면 군의 붕괴는 시간 문제다.

대한민국 공군에서 발생한 이번 맹물 비행기 추락 사고는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기상천외한 것이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기강해이 간과못해▼

군 당국은 저장 탱크에 균열이 갔다는 발표를 했고 한영수(韓英洙)국회국방위원장은 유류고 철판이 불량품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유류저장 탱크는 균열이 생길 수 없도록 지어졌어야 한다. 설령 균열이 갔다 해도 1만 배럴이 담긴 항공유의 압력을 밀어내고 물이 탱크 용량의 95%를 채우는 것은 과학이론으로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또 균열에 의해 조금씩 조금씩 물로 채워졌다면 사고는 95%가 되기 이전에 이미 났어야 했다. 결로(結露)에 의해 95%의 물이 채워졌다는 것은 더욱 허황하다. 항공유 관리 시스템은 엄격한 미군 시스템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며 정해진 절차에 따라 조종사의 마지막 점검을 포함해 5단계의 점검 절차중 단 한가지라도 제대로 했다면 사고는 일어날 수 없었다.

국방부에서 사고 원인을 전면 재조사하고 국회 국방위에서도 국정조사에 준하는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하니 납품비리와 관련한 수사를 철저히 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다. 과거 몇달 동안 전투기 또는 훈련기의 비행시간과 연료 주입량을 계산해 보면 항공유의 품질과 관련한 납품 비리의 성격이 드러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공군에는 항공유 잡유 수리부품 보급품 분야의 납품비리에 대한 소문이 파다했으니 이번 기회에 철저한 수사와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사실상 군은 지난해 12월 24일 발생한 나이키 오발사고에 대해서도 초기에 정확한 진상을 제대로 발표하지 않았다. 이 사고 역시 기네스 북에 오를 만한 것이었다. 군은 나이키 사고의 원인을 35년이나 묵은 노후장비이기 때문에 회로가 낡아 오발사됐다고 발표를 했다. 그러나 이 사고는 나이키 시스템의 여러 요소들을 잇는 케이블, 즉 한전에서 지하에 묻은 팔뚝 만한 굵기의 호스속에 피복된 30개 정도의 선들을 방치해 피복이 삭아 문드러져 선과 선들이 이리저리 합선돼 유도탄 내에 장착된 고체연료에 불을 댕겨 나간 것이었다.

▼철저히 수사해야▼

이같은 내용이 공군이 발표한 사고 조사보고서에 명백히 들어 있지만 전문지식이 부족한 기자 등 일반인들은 잘 해석할 수 없도록 표현돼 있다. 나이키가 노후한 장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날 발생한 사고는 장비 탓이 아니라 케이블 방치 탓이었다. 당시 군은 사고 원인이 인재(人災)냐, 불가항력의 사고냐에 따라 문책 범위가 결정되는 찰나였기 때문에 사고원인을 장비노후에 따른 불가항력의 사고라고 발표해 지휘부의 책임을 면한 것이다. 공군 내부에서는 준장 대령 중령 준위 등 7명에 대한 징계가 ‘근무태만’이라는 죄명으로 내려졌다.

군이 이렇듯 근무기강 해이로 인한 사고를 내고서도 잘 모르는 비전문가들에게 적당히 둘러대 어물쩍 넘기는 행태를 계속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군의 타락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고는 공군 수뇌부의 능력과 마인드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공군 수뇌는 예산투쟁을 하고 그 예산으로 가장 비싼 최신의 무기를 사려고 남보기에 지나치다 싶을 만큼 열을 올렸다. 더구나 최근에는 미국에서 사실상 생산라인이 폐쇄된 F15기를 도입하려 하지 않았는가. 김영삼(金泳三) 정부의 율곡사업 비리 수사에서 밝혀졌듯이 율곡사업은 한때 커미션 사업이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공군지휘부는 위험수위에 오른 해이해진 기강을 되살리고 국민이 혈세를 내서 사준 비싼 무기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맹물비행기 추락 사고는 공군 조종사들의 사기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엄청난 사고이다.

지만원<군사평론가·사회발전시스템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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