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재현/교육장관의 빗나간 의식

  • 입력 1999년 10월 27일 19시 14분


26일 서울고에서 열린 ‘교실 모습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털어놓은 우리의 교육현장은 한마디로 만신창이였다.

학생회장의 입에서 “학교수업은 실생활에 필요가 없고 성적에도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발언이 튀어나왔다.

평생 교직에 몸담았다가 정년퇴임하는 교사가 ‘버르장머리없는 아이들과 수업하지 않아도 돼 후련하다’는 말을 남겼다는 한 교사의 말에는 짙은 환멸 같은 것이 깔려 있었다.

이런 교실의 실상에 학부모들은 숨죽여 ‘설마’를 되뇌었다. 그들 속에 김덕중(金德中)교육부장관도 있었다. 김장관은 청중석에서 3시간 가까이 교육현장의 벌거숭이 고민을 경청했다.

하지만 세미나가 끝난 뒤 단상에 오른 김장관의 발언은 교육현장의 주체들이 안고 있는 고민을 간과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그는 “2002년 대학입시만 치르고 나면 모든 문제가 잘 풀릴 것”이라며 발언시간의 대부분을 새 대입제도의 설명에 할애했다.

교사와 학생들은 무너진 사제(師弟)관계와 열악한 교육환경이라는 절박한 문제를 제기했으나 김장관 생각에는 그 모든 잘못이 ‘줄세우기’와 ‘입시위주의 사고방식’에 있다는 선에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김장관은 “학생들의 수업태도를 내신평가에 반영하면 교사 말을 안듣는 학생은 대학을 갈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자연히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줄세우기’와 ‘입시위주의 사고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그러나 지금 교실붕괴 현상이 대학가기를 포기한 학생들이 늘면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장관은 모르는 것일까.

고교교육의 독자성은 방치한 채 ‘대학중심’의 틀을 벗지 못하고 있는 인식에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재현<사회부>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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