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심한 국회본회의 풍경

  • 입력 1999년 10월 27일 20시 10분


국회 본회의가 국무위원의 답변 도중 의사 정족수 부족 때문에 산회하고 서면으로 답변을 대신하는 한심한 작태를 보였다. 통일외교안보분야 대정부 질문이 진행된 그저께 국회 본회의는 국무위원의 답변 도중 의원들이 하나 둘 자리를 빠져나가 60명인 의사 정족수마저 채우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결국 홍순영(洪淳瑛)외교통상부장관은 서면으로 답변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원회의 경우 준비부족 또는 시간 등 불가피한 사정 때문에 서면답변을 하거나 서면질문을 할 때가 간혹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국무위원의 답변 도중 의사 정족수가 되지 않아 서면답변을 하기로 하고 산회하는 경우는 의정 사상 보기 드문 일이다. 의원들이 국정 논의에 얼마나 무성의하고 무책임한지를 스스로 드러냈다. 이날 자리를 지키고 있은 의원은 50여명이라고 하니 나머지 2백 수십명의 의원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의원들의 국정논의 태도가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진정으로 민의를 대변하기보다는 순간적인 인기에만 영합하려 하고 국익보다는 당리 당략에 얽매이다 보니 본회의나 상임위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드문 게 우리의 현실이다. 특히 의사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본회의 개회가 지연되는 사태는 흔히 있어 왔다. 회의가 열리더라도 질문을 하지 않는 의원들은 슬쩍 본회의장에 얼굴만 비치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의석을 지키고 있는 의원들도 대부분이 옆 동료와 잡담을 하거나 졸고, 질문을 한 의원조차 정부측 답변을 제대로 듣는 이가 드물다.

이번과 같은 ‘해괴한 사태’가 벌어진 데는 국회 본회의 운영 자체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정부 질문의 경우 여야 의원들이 줄줄이 단상으로 나와 질문을 퍼붓고 관계 국무위원은 일괄 답변을 하다보니 답변내용도 성의가 없고 듣는 의원들도 지루할 수밖에 없다. 국회본회의 운영방식을 개선하는 방안도 강구돼야 한다. 그럭저럭 ‘때우는’ 식의 답변을 되풀이하는 정부측의 안일한 자세도 시정되어야 한다.

국회가 열릴 때마다 정부 각 부처에서는 답변준비로 정상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온다. 그러나 막상 국회는 의사정족수도 못 채울 정도로 나태한 모습을 보인다면 누가 국정논의에 대해 신뢰를 하겠는가. 국회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개선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의원 개개인의 자세가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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