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누가 거짓말 하나

  • 입력 1999년 10월 27일 20시 10분


국민회의는 어제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이 폭로한 ‘언론장악 음모’ 문건은 중앙일보 문일현(文日鉉)기자가 작성했으며, 이를 중앙일보 간부가 정의원에게 전달했다고 발표했다. 국민회의는 현재 중국 베이징에서 연수중인 문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문기자가 문건 작성 사실을 시인했다고 밝혔다. 반면 한나라당과 폭로 당사자인 정형근의원은 언론인으로부터 제보받은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그런 만큼 사건의 경위와 전모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다.

사건의 전모는 앞으로 한 점 의혹 없이 밝혀져야 하겠지만 중앙일보 문기자가 ‘언론장악’ 문건을 작성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도대체 현직 언론인이 정권에 언론장악을 하라고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썼다니 놀랍고 개탄스럽다. 문기자는 물론 소속사인 중앙일보사도 응분의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본다. 중앙일보측은 문기자가 문건 작성 당시 휴직원을 내고 연수중이어서 중앙일보기자의 신분이 사실상 정지된 상태였고, 문건 작성도 문기자 개인이 한 일로 회사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번 일로 인해 전체 언론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증폭되고 있다는 점을 가볍게 넘길 수는 없을 것이다.

책임문제와는 별도로 문기자가 자발적으로 권력측에 ‘연애편지’를 쓴 것인지, 아니면 권력측의 요구에 따른 ‘주문생산’인지부터가 명백히 밝혀져야 한다. 이 점은 이번 사건의 본질을 좌우하는 핵심적인 사항이다. 그리고 차제에 언론계 내부에 일부 기생하고 있는 듯한 ‘정언(政言)유착’의 치부(恥部)는 조직이든 개인이든 말끔히 도려내야 한다. ‘누구 장학생’ 하는 식의 유착관계가 아직 남아 있다면 이번 일을 계기로 척결해야 마땅하다.

이번 사건의 의혹을 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문기자가 작성한 문건을 처음 누구에게 건넸고, 그것이 어떤 경로를 거쳐 다시 정형근의원에게 전달된 것인지가 분명해져야 한다. 중앙일보는 어제 오후 ‘문건에 대한 입장’ 발표에서 문기자의 말을 빌려 이 문건이 맨 처음 이종찬(李鍾贊)국민회의부총재에게 전달됐다고 밝혔다. 이부총재측은 보좌관이 문건을 받긴 했지만 이부총재에게는 전달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으나 여러 정황으로 보아 ‘주문생산’의 개연성도 무시하기 어렵게 됐다. 더구나 국민회의의 발표 내용과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본란에서 지적했듯이 이번 일은 정부의 정통성과 국민의 기본권인 언론자유의 문제가 걸린 중대 사안이다. 사실을 밝히는 데 있어 추호도 의혹이 남아서는 안된다. 정부 여당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히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 책임은 야당인 한나라당에도 있다. 여당의 발표내용이 사실무근이라면 그것을 입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증거를 밝혀야 한다. 시간을 끌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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