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투명성기구(TI)가 최근 수출주도국 19개국을 선정, 이 나라의 기업들이 외국과 거래할 때 뇌물을 주는 정도를 조사한 뇌물지수(BPI)를 발표한 결과 ‘아시아의 용(龍)’들이 모두 나쁜 점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청렴하다고 알려진 싱가포르 11위, 일본 14위를 포함해 말레이시아 대만 한국 중국(홍콩포함) 등이 모두 하위권에 그친 것.
이같은 결과에 대해 전문가들은 해당 국가들의 수출지향적 경제정책과 동양적 가치관이 주요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 싱가포르 등 ‘신흥공업국’들이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데에는 철저한 수출드라이브 정책이 주효했고 그 과정에서 자국과 수출대상국의 정부관리 등에게 ‘기름칠’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삼성경제연구소 전영재(全永宰)수석연구원은 “특히 개도국에 진출, 대형공사를 수주하기 위해선 정부관리에게 리베이트나 정치헌금을 주는 것은 중요한 관행”이라며 “선진국의 자본기술력에 맞서 수출에 절대 의존해 온 해당국가들의 단기간 ‘압축성장’정책도 주요 원인”이라고 밝혔다.
한편 유불교와 인맥 등을 중시하는 동양적 가치관도 이같은 결과에 ‘한몫’했다는 지적이다. 서양적 기업문화에서는 ‘선물은 뇌물로 간주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선물의 한계에 상당히 신경들을 쓰지만 동양에서는 ‘선물은 뇌물이 아니다’는 인식이 일반화되어 있어 ‘선물을 가장한 뇌물’이 통용될 여지가 그만큼 넓다는 것.
조사에서 상위그룹을 차지한 캐나다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은 부패방지법을 제정, 경영과 관련해 공직자에게 선물을 줄 경우 모두 뇌물로 간주해 엄격한 처벌을 하고 있다.
산업연구원 고준성(高俊誠)박사는 “2월 발효된 뇌물거래방지협약은 미국이 세계시장에서 유럽기업을 견제하기 위한 고육책이지만 우리 기업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가능성도 높다”며 “결국 기존의 관행에서 탈피해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재고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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