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서울의 얘기가 아니다. 약 50년 전 ‘킨지 보고서’에 나타난 미국인들의 성생활이다. ‘남성의 성생활’(1948년)과 ‘여성의 성생활’(1953년) 2권의 책으로 나온 ‘킨지 보고서’는 말 그대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수치로 드러난 미국의 ‘성적 타락’과 문명이란 가면에 가리웠던 ‘야수성’에 사람들은 놀라고 당황했다. 반 더슨이라는 신학자는 “만일 보고서가 사실이라면 미국의 성적 타락은 로마시대 최악의 시기와 비슷하다”고 개탄했다.
당혹감은 킨지에 대한 분노로 폭발했다. “우리의 어머니와 아내 딸들에 대한 세기적 모욕이다” “킨지는 좋은 남편을 종마(種馬) 취급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미국 하원에는 특별위원회가 구성돼 연구에 재정지원을 한 록펠러재단을 조사했고 압력에 못이겨 록펠러재단은 지원을 중단했다.
그러나 두 책은 학문적 그래프와 표로 가득해 대중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50만권이나 팔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2,3위에 올랐다. 곧바로 세계 13개국에서 번역됐으며 프랑스 스웨덴 등에서는 아류 보고서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나 반더빌데의 ‘완전한 결혼’등 성과 관련된 저술들은 그 전에도 많았다. 그러나 킨지보고서가 충격적이었던 것은 엄청나게 방대한 자료에 근거해 미국인들의 실제 성생활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성교시간(47.6%는 5분 내 사정, 22.9%가 10분 이상 지속, 17.6%는 2분 내 사정), 부부의 성교횟수(10대는 1주에 2.8회, 30세까지는 2.2회, 50세까지는 1회), 즐겨 사용하는 체위, 동성애와 항문성교의 경험까지 온갖 성생활의 양태가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집계되었다. 이 보고서의 통계에 직접 사용된 표본은 남자 5300명, 여자 5940명 등 1만여명이었으나 실제로 킨지가 면접 조사한 사람은 1만8000명에 달했다. 이처럼 계층별 지역별 연령별로 광범하고 방대한 성에 관한 조사는 지금까지도 전무후무하다.
이 방대한 연구는 거의 앨프리드 킨지 교수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졌다. 북아메리카의 말벌을 연구하던 동물학자 킨지가 인간의 성행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 안에서의 몇가지 ‘사건’ 때문이었다. 인디애나대 교수였던 킨지는 1920년대 어느날 교수위원회에 참석했다. 학내 문학잡지에 남근숭배와 관련된 속된 표현을 쓴 한 학생의 처리 문제가 이날 안건이었다.
킨지는 “젊은이들은 동물적 충동을 표현함으로써 어른이 되려는 자연스러운 본능을 갖고 있다”며 학생을 적극 옹호했다. 학생들의 성본능에 대한 그의 이해심은 대학 간부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1938년 킨지의 전공, 나아가 그의 삶 전체를 바꾼 계기가 생겼다. 대학 여학생회는 학교측에 결혼을 했거나 결혼을 앞둔 학생들을 위한 강좌를 열어 달라고 요청했다. 허먼 웰즈 총장은 젊은이들의 욕구에 깊은 이해를 보였던 킨지교수를 책임자로 임명했다.
‘결혼강좌’의 총책임을 맡은 킨지는 법적 사회적 생리학적 심리학적 역사적인 측면에서 결혼의 의미를 짚는 12강좌를 마련했고 스스로 3강좌를 맡았다. 학점도 없는 강좌에 대학원생과 그 애인, 그리고 교수 부인들이 몰려 강의실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결혼강좌가 성보고서로 발전하게 된 것 역시 뜻하지 않은 일이었다. 강좌를 들은 몇몇 학생이 상담을 하기 위해 킨지를 찾아왔다. 성에 대한 학생들의 갖가지 경험과 고민을 들은 킨지는 그것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강좌를 시작하면서 인간의 성행위에 대한 자료와 지식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킨지는 자신이 자료를 모으기로 결심했다. 주말마다 전국 수백개의 도시와 마을을 다니며 심층 인터뷰를 한 지 10년 만에 첫작품 ‘남성의 성행동’이 출간됐다.
‘킨지 보고서’는 사회적 억압과 종교적 금기 때문에 감춰져 있던 성의 실상을 만인 앞에 드러냈다. 그러자 성에 관한 담론이 밀실에서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억눌렸던 성적 표현들도 화산처럼 분출했다.
킨지보고서 여성편이 출판된 53년말에는 도색잡지 ‘플레이보이’가 창간됐고 마릴린 먼로와 엘비스 프레슬리 등 대중의 성적 욕망을 자극하는 스타들이 폭발적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영화와 가요 TV드라마에도 노골적인 성 묘사가 등장했으며 오늘날에는 섹스숍과 인터넷 포르노사이트가 번창하고 있다. ‘성은 자연스럽고 건강한 삶의 일부’ ‘지나친 성개방은 타락’ ‘성의 상품화는 인간의 상품화’ 등 다양한 논란과 표현 속에 20세기는 저물고 있다.
〈블루밍턴(인디애나주)〓신연수기자〉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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