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나미/학생들이 거리를 떠도는 까닭

  • 입력 1999년 11월 3일 17시 55분


생떼 같은 우리 자식들이 또 어이없이 목숨을 잃었다. 세상을 떠난 어린 영혼과 가족들에게 참으로 죄송스럽기만 하다. 우선 모두가 분개하는 점은 철저하지 못한 행정감독과 청소년들에게 술을 파는 유흥업소의 비양심이다. 자꾸 늘어만가는 유흥업소들이 학교에 정을 붙이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간악하게 유혹하니 예쁜 내 새끼들의 몸과 마음은 자꾸 오염될 수밖에 없다. 지방자치제이후 단체장들은 표를 의식해 오히려 단속인원을 대폭 줄이고 업자와 일부 공무원은 공생관계를 유지하면서 눈 가리고 아웅하고 있다. 선심행정과 선거에만 신경을 쓰는 무능한 지방자치단체는 이제 중앙에서 과감히 통제를 하고 유권자들이 퇴출을 시켜야 한다.

청소년들은 왜 거리를 떠도는가. 술집에 가는 청소년늘 다 문제아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요즘 중고등학교에서는 술 담배 않고 모범적으로 공부를 하는 아이들이 오히려 따돌림을 당한다. 내신제도가 학교생활을 극심한 경쟁으로 내몰아 아이들을 서로 적으로 만들어 정신을 뒤틀리게 하고, 결국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학교를 떠나게 한다. 요즘에는 특수목적고교 뿐 아니라 일반고교에서도 한 반에서 많게는 십수명까지 자퇴를 한다. 재학생들도 학교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심지어 우등생마저도 입시나 자기 인생에 전혀 도움되지 않는 고리타분한 교과과정을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갈 뿐이다. 어른들은 그래도 참으라지만 그런 인내는 우리 사회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첨단 정보사회에서 학교 수업은 아직 19세기에 머물러있으니 국가경쟁력만 급속히 떨어질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술과 춤으로 답답함을 풀겠다는 아이들을 어떻게 일방적으로 꾸중만 할 수 있는가.

특히 대학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빨리 독립을 원하는 아이들 마음을 부모나 교육담당자들은 겸허하게 경청해 그들 능력을 키워 주자. 그들이 원하는 관광 정보통신 디자인 대중문화 조리 이미용 자동차산업 인테리어전문가를 길러내는 고등학교를 만들어 집중적으로 투자하라. 현명한 아이들은 박사 룸펜보다는 성실한 사회인이 되고 싶어 하는데 어른들은 고리타분한 옛 생각에 잠겨 대학 타령만 한다. 두 번째로 학교 수업은 일단 사무적 강압적 방식으로 모든 과목을 다 이수해야 한다는 고정관념부터 바꾸자. 예컨대 미술 음악 중 하나만, 과학이나 사회 중 자기들이 정말 좋아하는 것만 택하되 그 방면에서는 일찌감치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중학교부터 방향을 잡아 줄 수는 없는가. 뭐든 다 잘하면 결국 아무 것도 되지 못하는데도 지금의 교육제도는 현실에 무능한 ‘먹물’되기만 강요하니, 이에 부응 못하는 아이들은 소외된 채 거리에서 향락산업의 제물로 전락하고 만다. 청소년들에게 건강하고 행복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우리 어른들의 의무가 아닌가.

학교가 죽으면 우리의 미래도 같이 죽는다. 우리 청소년들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하루빨리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라는 엄중한 메시지가 이번 인천 참사 소식에 담겨 있다.

이나미(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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