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집 주인이 관할 경찰서 간부에게 자기집 일부를 공짜로 전세주었다는 대목에 이르면 할 말을 잊는다. 그뒤 그는 경찰관과 호형호제하며 단속정보를 미리 빼내는가 하면 호프집을 수리할 때 순찰대 차량과 전경들을 지원받는 일까지 있었다는 보도다. 경찰은 고교생들에게 술을 팔고 있다는 주민신고를 받고도 잘못된 신고로 처리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호프집 주인은 구청의 영업장 폐쇄 또는 영업정지명령을 받고도 끄떡하지 않고 영업을 계속했으며 최근 소방점검에서도 ‘이상 없음’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관련 공무원들이 공무원인지 사무원(私務員)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다.
돈 버는데만 혈안이 돼있는 업주는 그렇다 치고 도대체 공무원들이 제정신인지 알 수가 없다. 공무원들은 청소년들의 안전이나 생명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것 같다. 현정부 출범 후에도 요란했던 공직사회 부패척결 작업의 결과가 이 모양이니 이른바 ‘개혁’을 바라보는 시선이 냉소적일 수밖에 없다. 공직기강을 쇄신하겠다면서 정부가 넉달여전 내놓은 ‘공직자 10대 준수사항’ 역시 전시행정의 한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당국의 감독소홀과 유착비리가 어린이 등 23명의 생명을 앗아간 씨랜드화재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다시 터진 이번 참사는 업자―공무원간의 구조적 비리커넥션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잘 나타낸다. 그런데도 정부는 공직사회가 많이 나아졌다고 자신하고 있다. 국민의 체감으로는 전혀 달라진게 없다. 오히려 보다 지능적으로 되어가는 게 아니냐는 소리가 설득력 있게 들리는 편이다. 이번 참사에서 드러난 중하위 공직사회의 부패사슬은 과연 상위직과는 차단돼 있는가.
씨랜드화재로 아들을 잃은 전 필드하키 여자국가대표선수 가족이 이번 참사를 보고 이민을 앞당겨 가겠다고 나섰다. 아이들을 마음 놓고 키울 수조차 없는 ‘정신 못차린 조국’을 떠나련다는 처절한 절규는 결코 한 가족만의 목소리가 아닐 것이다. 정부가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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