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을 출세나 돈의 징검다리 쯤으로 생각하는 일부 기자들이 있다. 정치부 기자와 방송국 앵커를 해야 고급관리나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자들도 적지 않다.
▼정보관리 윤리 不在▼
금번 파동과 관련해 소문과 억측이 나라를 온통 뒤집어 놓고 있다. 문일현기자는 왜 ‘언론대책 문건’을 작성했으며 그것을 왜 여당 이종찬 부총재에게 전달했는가. 이부총재는 그 문건을 어떻게 처리했는가. 이도준기자는 그 문건을 어떻게 입수했으며 무슨 이유로 야당 정형근의원에게 전달했는가. 정의원은 그 문건을 하필이면 왜 이 시점에 폭로했는가.
중앙일보 문일현기자와 평화방송 이도준기자는 그 문건을 소위 말하는 출세와 돈을 위해 전달했는지도 모른다. 이부총재와 정 의원은 공작과 정략 때문에 그 문건을 입수했고 또한 폭로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파동은 이 나라 정치와 언론의 타락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보기 드문 사건이라 하겠다.
언론의 기능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기능은 정치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데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의 발전은 정치권력과 언론이 ‘자연스러운 적대관계’를 유지하면서 상호견제와 균형의 역동적 상호작용을 활성화할 때에 구현되는 것이다.
언론은 권력과 돈을 먹고 사는 직업이 아니고 사회정의와 진실을 먹고 사는 직업이다. 언론이 국민의 편에 서서 권력을 감시하면서 사회정의와 진실을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정보관리의 지식적 능력과 함께 정보관리의 윤리적 능력을 동시에 겸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정보관리의 지식적 능력이 보도의 필요요건이라 한다면 정보관리의 윤리적 능력은 보도의 충분요건이 된다. 따라서 정보관리의 지식적 능력은 그것만으로는 항상 불충분하고 도덕성과 윤리성으로 무장될 때에만 비로소 필요충분해지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사회가 기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정보관리의 지식적 능력이라기보다는 정보관리의 윤리적 능력이라 판단된다. 왜냐하면 지식이란 지식주체의 마음가짐에 따라 문명의 이기가 되기도 하고 또한 문명의 흉기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혜는 지혜 주체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야누스의 얼굴을 가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혜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고 도덕성과 윤리성으로 무장된 지식이기 때문이다.
▼언론 스스로 규제해야▼
오늘날 우리사회가 요구하는 기자는 소위 말하는 머리좋은 기자가 아니고 가슴이 뜨거운 기자인 것이다. 언론은 어떻게 보면 두뇌의 게임이라기보다는 가슴의 게임이라고 생각된다.
머리 좋은 사람이 반드시 좋은 기자가 된다고 말하기 어렵다. 기자는 사사로운 사람(私人)이 아니고 공익성과 공공성을 위해서 헌신하는 공인(公人)이며 단순한 기능직이 아닌 전문직이고, 단순한 월급쟁이가 아닌 사회정의와 진실을 위해 헌신하는 천직이기 때문이다.
언론의 직업윤리를 회복하고 재정립하는 노력이 시급히 강구돼야 하겠다. 어떻게 보면 우리사회는 똑똑한 사람들을 양산하는 데에는 성공했는지 몰라도 바른 사람을 육성하는 데에는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언론 곳곳에 똑똑한 사람들이 판을 치고 있는데 반해 바른 사람들은 눈을 부릅뜨고 찾아 보아도 찾을 길이 없다.
언론의 직업윤리성을 회복하고 재정립하려는 노력은 학교교육에서부터 기자선발에 이르기까지, 기자선발에서부터 기자관리의 전과정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이고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전 과정을 통해 단순한 지식이나 기술보다는 도덕성 윤리성 직업의식 국가관 등이 보다 중요시되는 관행과 제도가 새로이 정립돼야 하겠다.
언론의 윤리성 회복과 재정립은 어떠한 유혹이 있다 하더라도 언론 자신에 의해 자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자기 입법적 자율에 의한 규제야말로 언론에 요구되는 진정한 능력일 뿐만 아니라 언론을 진정 자유케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서정우<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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