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동안 비밀은 당신의 수인(囚人)이다. 그러나 털어놓으면 당신이 바로 비밀의 수인이 된다.’ 유태인들의 얘기라고 한다. 장씨는 그런 발설의 앙화를 고려했는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90년 4월 박철언 당시 정무장관도 ‘입을 열면’이라면서 관심을 끌었다. “김영삼 최고위원의 합당관련 비화를 공개하면 그는 정치생명이 하루아침에 끝날 것”이라고. 그러나 지금 보면 경천동지할 얘깃거리도 아니었던 것 같다.
▽옥중의 한보그룹 정태수씨도 입을 열면 세상이 뒤집힐 것이라는 제스처로 재판에 임했다. 돈봉투를 받은 정계 인사들이 옥중에 도움의 손길을 뻗쳐 주길 기대했던 것일까. 홍인길 전청와대 총무수석도 갇힌 몸이 되어 “내 돈 안 먹은 사람 있나”라고 불평했다. 5공의 금융가 황제로 불린 이원조씨도 쫓기는 처지가 되어 “당신들 이러면 다 까발릴 거야”라고 항변했었다.
▽이렇게 큰소리친 사람들은 무슨 이유에서건 다들 폭로하지 않고 지나갔다. 역시 비밀이란 감추고 있을 때 무기일 뿐, 햇볕 아래 까발리면 위력없이 증발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어쨌건 비밀 비화가 비상한 관심을 끄는 사회는 건강하다고 볼수 없다. 음습한 구석이 많다는 증거이다. 그런 허약한 체질을 비집고 ‘절도혐의자’ 이도준씨가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김충식<논설위원〉sear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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