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회에서 풀어라

  • 입력 1999년 11월 5일 19시 18분


우리는 그동안 ‘언론장악 음모 의혹’사건에 대한 논평에서 야당인 한나라당의 대응방식이나 언론대책 문건 폭로자인 정형근(鄭亨根)의원의 행태에 대해 상대적으로 비판을 늦춰왔다. 이번 사건의 본질적 의혹은 문건이 어떻게 작성됐으며 그것이 현정권의 언론대책에 실제적으로 활용됐는지 여부에 있는 것이고, 문건의 전달 및 폭로과정은 부차적인 문제로 보았기 때문이다. 큰줄기보다 곁가지에 비중을 둘 경우 사건의 본질이 희석되거나 왜곡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의 대응방식과 정의원의 행태가 옳다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이 부산에서 가진 ‘김대중(金大中)정권 언론자유 말살 규탄대회’에 대해 우리는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야당이 장외로 뛰쳐나갈 수밖에 없었다는 사정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집회장소를 굳이 부산으로 택한 점부터가 문제다.

한나라당으로서는 당의 지지기반인 지역에서 바람을 일으킨다는 전략적 선택이었겠으나 당의 이익보다는 ‘지역감정 부추기기’란 보다 큰 국가사회적 폐해를 먼저 고려했어야 한다고 본다.

부산 집회에서 쏟아져나온 발언들을 보면 한나라당이 현정권의 ‘언론장악 음모’를 성토하자는 것인지, 내년 총선을 겨냥한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다. “부산 신항만 예산을 전남 광양항으로 가져갔다”느니 “김대통령이 부산을 자동차산업의 공동묘지로 만들었다”느니 하는 소리가 ‘언론자유 말살 규탄대회’와 무슨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가. 노골적인 ‘지역감정 부추기기’ 아닌가.

더구나 정형근의원은 김대통령에 대해 “공산당의 전형적인 선전수법” “지리산빨치산 수법”이라는 등 ‘색깔론’ 유발의 오해를 살만한 말들을 마구 쏟아놨다. 정의원은 먼저 검찰소환에 응해 이번 사건의 관련부분과 진실을 밝혀야 한다.

한나라당은 이제 장외투쟁에서 국회로 돌아와야 한다. 9일로 예정된 수원에서의 2차 장외집회는 철회해야 한다. 그리고 여야(與野) 모두 보다 진지한 자세로 국정조사에 임해 이번 사건의 본질적 의혹을 풀어야 한다. 피차 뻔히 알면서도 되지도 않을 증인 신청 등으로 샅바싸움만 할 게 아니라 작더라도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한다. 한나라당은 장외투쟁을 고집할 경우 여당에 단독국회의 명분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지금 국회에는 내년도 예산안 등 의사봉을 기다리는 민생관련 법안이 산적해 있다. 여야가 정략에 매달려 민생을 외면하려든다면 결국 국민의 ‘거대한 분노’에 직면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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