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강우방/한일문화교류와 열린 마음

  • 입력 1999년 11월 5일 19시 18분


국립경주박물관과 일본 나라(奈良)국립박물관은 최근 두 박물관의 학술교류에 관한 협정 조인식을 가졌다. 그동안 양국 국립박물관들은 잦은, 그러나 체계적이지 못하고 심층적이지 못한 교류를 지속해왔다.

이런 상태를 지양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국가 대 국가의 성격을 가지며, 공동연구 심포지엄 교환전시 연구자의 교환 등을 골자로 한 문화교류협정을 맺기는 처음이다. 테이블 위에 태극기와 일장기를 함께 꽂고 우치다 히로야쓰(內田弘保)나라관장과 마주 앉아 협정서에 서명한 후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러나 이 작은 의식(儀式)은 중요한 상징을 띤다. 왜냐하면 경주는 신라시대 불교문화의 중심지여서 헤아릴 수 없는 유적 유물이 밀집돼 있으며 나라 또한 나라시대 헤이안(平安)시대 가마쿠라(鎌倉)시대에 걸친 유적 유물이 밀집돼 있는데 이 두 문화처럼 밀접하게 평행하여 전개되는 관계를 보여주는 경우가 지구상에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경주와 나라는 8세기에 중국의 시안이나 뤄양과 더불어 가장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곳이다. 경주에는 세계에 자랑하는 석불사 불국사 성덕대왕신종등이 있고, 나라에는 호류지(法隆寺) 고후쿠지(興福寺) 도다이지(東大寺) 등이 있다.

그런 이유로 나는 경주박물관장으로 부임한 지 얼마 안되어 일본 문화청 초청으로 나라박물관에 들렀을 때, 우치다관장에게 학술교류를 공식화하기를 제의했던 것이다. 처음엔 주춤한 반응을 보였으나 2년 만에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이 두 곳은 과거에 매우 훌륭한, 동등한 문화를 간직하고 있었기에 문자 그대로 문화의 교류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협정을 맺고 돌아오는 날 비가 내렸다. 비를 맞고 도다이지와 가스가다이샤(春日大社)를 돌아 걸으며 만감이 교차했다. 어딘가 쓸쓸한 마음이 일었다. 그 문화교류란 시대착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국립경주박물관은 나라박물관에 비해 소장유물의 질과 양이 월등하지만 박물관의 건물과 진열장 수장고 도서실 자료실 등 시설은 우리와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였고 연구실에는 여러 분야에 골고루 걸친 학예관들이 당당히 포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는 길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그들보다 두배로 노력을 기울여 내실을 기한다면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저해요소는 우리나라 문화에만 관심을 갖는, 일종의 나르시시즘이다. 전문가에 못지않게 일반 국민의 문화의식도 중요하다.

학자들은 물론 국민의 눈과 마음은 굳게 닫혀 있고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 문화의 의미와 중요성을 자각하지 못한 채 닫혀 있다는 사실이다. 학자들은 학문에 대한 열정이 결여돼 있고, 국민은 문화에 대하여 무관심하다.

우리는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 그리고 우리의 영향을 받은 일본미술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자기 나라의 문화를 참으로 이해하고 사랑해야 다른 나라의 문화도 이해하려 하고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법이다. 그래서 기자회견 때 가장 일본적인 미술을 한국에서 전시하고 싶다고 피력했다. 마음을 열었을 때 문화수준이 높아지고 사물을 보는 안목이 좋아질 것이다.

문화에 대한 참된 인식, 깊은 사랑, 높은 안목이 성숙되었을 때 참된 문화교류가 가능해질 것이다. 과거의 문화수준이 동등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문화수준도 동등해야 한다. 문화교류에 있어서 과거보다 현재가 더 중요함을 이번처럼 절감한 때는 없었다.

강우방(국립경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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