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밀레니엄/코카콜라]세계인의 음료 되기까지…

  • 입력 1999년 11월 7일 20시 05분


코카콜라가 미국적 가치의 등가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그 본격적인 해외진출이 시작된 2차세계대전과 맞물린다.

일본의 진주만기습 후 코카콜라의 로버트 우드러프회장은 “비용이 얼마가 들더라도, 미군이 주둔하는 곳이면 어디든 단돈 50센트에 코카콜라를 마실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선언했다.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전선의 곳곳에 64곳의 코카콜라 공장이 설립되면서 전쟁 기간에 50억병의 코카콜라가 전세계 미군에게 공급됐다. 수백만명의 미군은 전세계에 파견된 코카콜라의 영업사원이 됐고 전쟁이 끝난 뒤 이들 공장은 고스란히 코카콜라 해외진출의 전략기지로 활용됐다.

폐허가 된 이들 나라에서 코카콜라는 자유롭고 풍요로운 미국에 대한 동경의 한 형태로 발전했다.

하지만 동시에 반미(反美)주의자들에게는 미국의 경제적 문화적 침략의 대표적 상징물이었다.

벨기에 공산당은 한때 코카콜라 애호자를 ‘파시스트’라고 규정했고 오스트리아에서는 코카콜라공장이 원폭공장이라며 철거를 요청하는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다. 79년 호메이니가 집권한 뒤 이란에서도 코카콜라는 금지품목 우선순위로 올랐다. 코카콜라의 저력은 이러한 현지의 반발을 고려해 지나치게 미국 중심의 이미지를 중화시키는 전략을 채택했다는 점에 있다. 해외공장을 현지기업에 맡겨 운영하도록 계약하고 광고에서도 현지인 모델을 내세우는 등 현지인의 거부감을 최소화했다.

20세기말 세계최고 브랜드로서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코카콜라의 새천년의 포부는 무엇일까.

코카콜라 홍보담당 이사 케리 트래버트는 “미국인 한사람이 1년간 마시는 코카콜라가 395병인 반면 중국은 7병, 인도는 3병에 지나지 않는다”는 우회적인 말로 그 대답을 대신했다.

〈애틀랜타〓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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