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그림에세이 '풍경' 저자 원성스님

  • 입력 1999년 11월 7일 20시 05분


요즘 장안의 베스트셀러는 원성스님(27)의 그림에세이 ‘풍경’(이레)이다.

해맑고 천진무구한 동자승의 그림에, 산사의 생활과 자연을 담백하게 묘사한 글. 발간 두달만에 20만부를 찍었다. 해외에서 출판 요청도 쇄도하고 있다. ‘풍경’은 찬바람 부는 계절에 맞다. 사색하고 반성하며 또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은행잎이 떨어지는 날, 서울 인사동에서 원성스님을 만났다. 먼발치로 모습을 드러낸 스님의 얼굴이 그의 그림 동자승 그대로다. 먼저 세속적인 질문을 던졌다.

“여성팬이 많다는데,팬레터는 많이 옵니까?”

“글쎄요.”

잠시 머뭇거리더니 학교에 들러 가져왔다는 팬레터를 쓱 내밀었다. 그는 중앙승가대 졸업반이다. 인천의 한 수도원에 있는 신부로부터 온 편지였다.

그에게 오는 팬레터는 하루에 예닐곱통. 그러나 빙산의 일각이다. 스님이 주소를 간직하고 있는 팬은 5만여명. 여학생 아주머니 할머니 대학교수 기독교신자 등 구분이 없다. 5년전부터 20여 차례 동자승 그림 전시회를 여는 동안 그를 격려해준 팬들이다.

한번 더 세속적인 질문을 건넸다.

“세간의 스타로 떠올라 서울과 지방으로 팬사인회를 하러 다니다 보면 수행 정진에 방해가 되지는 않는지요?”

“주변에 염려하는 분도 계십니다. 하지만 돈과 명예를 위해 책을 낸 게 아닙니다. 베스트셀러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주위의 관심은 더 열심히 수행하라는 채찍으로 생각합니다.”

스님은 말을 이었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기쁨이나 만족에 도취돼 살아선 안됩니다. 남을 위해 보시하고 나를 돌아보는 일, 자연을 사랑하는 일, 이것이 순수고 수행이고 불교입니다. 이 점을 동자승의 눈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같이 일상적 얘기도 들어있습니다. 스님도 눈물을 흘리는, 미완성의 인간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늘 깨달음을 구하는 거지요.”

그는 재주가 많다. 침도 잘 놓고 요리도 잘 한다. 그가 야채전골 요리를 하는 날이면 산중의 스님들이 다 모여든다. 또 꽃꽂이를 잘해 상을 타기도 했고 피아노도 수준급이다. 승복을 입고 서울 롯데월드에서 피겨스케이트를 탄 적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외부에서 오는 기쁨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연과 대화하고 저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것입니다.”

스님은 17세에 출가했다.

“동자승의 얼굴엔 깨닫고 버리고, 버리고 텅비어서 얻어낸 우주와의 합일이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동자승을 그리게 됐습니다. 그리고 제 그림은 제 불심의 표현입니다.”

그는 내년초 승가대를 졸업하면 더 공부하기 위해 깊은 산사로 떠날 생각이다. 어느 산사로 가느냐고 물었다.

“죄송하지만 비밀입니다. 이제 도시를 떠날 때가 됐지요.”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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