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佛 레제르 작품 '빨간귀' '원시인 1,2' 3권 출간

  • 입력 1999년 11월 8일 19시 16분


유럽 만화는 극화(劇畵)위주의 일본 만화와는 달리 철학적인 전통이 강하다. ‘그림 소설’로도 불리는 유럽의 만화는 일체의 권위와 제도, 문명의 위선에 맞서는 지식인의 예술적 수단으로 사용돼왔다.

▼암으로 42세때 요절▼

현대 프랑스의 대표적 만화가인 장 마르크 레제르(1941∼1983). 그의 만화는 한 순간에 그려진 듯 불필요한 요소가 일체 배제된 것이 특징이다. 무겁고 촘촘하며 명암의 대조가 뚜렷한 독일 만화와는 또다른 프랑스 만화의 전통을 잇고 있다.

42세의 나이에 암으로 요절할 때까지 그는 만화를 통해 개인에게 가해지는 세상의 무자비하고 잔인한 폭력을 묘사해왔다. 최근 국내에 번역된 ‘빨간귀’와 ‘원시인 1,2’(열린책들)는 이같은 그의 만화세계를 엿볼 수 있는 대표작.

▼권위와 위선에 반기▼

‘빨간귀’는 귀가 시뻘개지도록 늘 따귀를 맞는 아이의 모습을 여러 가지 상황에서 묘사하고 있다. 이 아이는 특별히 악의를 가진 것도 아니고 교활하지도 않다. 공격해오는 것은 늘 어른들. 그러나 ‘빨간 귀’는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 이 아이는 현실 속의 어린이가 아니라, 레제르가 보여주고 싶었던 사회적인 억압에 굴하지 않는 영웅이다.

‘원시인1,2’는 절정에 달한 레제르의 기교를 잘 보여주는 대표작 중의 하나. 자연을 사랑한 환경주의자로, 서구 문명의 오만함을 비판하는 문명비판자로서 그의 시각이 번뜩인다.

아프리카 어딘가일 것으로 짐작되는 장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원시인과 동물들의 천진난만한 삶은 현대인에게 기묘한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현대인에게 해방감▼

그는 1960년 프랑스 최초의 만화잡지인 ‘하라―키리’(할복·割腹)의 창간멤버였다. 이후 20년간 이 잡지는 판매 금지, 폐간, 재창간을 되풀이하며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시험해왔다.

이 잡지에 실린 극도로 단순화된 그의 촌철살인적 유머는 68년 5월혁명 이후 점차 정치적인 의미를 띠게 된다.

레제르는 70년대 말부터 제도권 언론인 ‘르몽드’지 등에도 만화를 기고했으며, 프랑스 현대 만화가 푸제가 그림을 그린 대히트작 ‘80개의 개그로 본 프랑스의 역사’에서 스토리작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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