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호텔에 밀리는 풍치지구

  • 입력 1999년 11월 9일 18시 45분


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 장관은 그저께 청와대 관광진흥확대회의에서 “서울시내 관광호텔 건축을 촉진하기 위해 앞으로 남산을 제외한 풍치지구내에 관광호텔 건축을 허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숙박시설은 못짓게 되어 있는 풍치지구에 외국관광객 유치목적으로 관광호텔 건축을 새로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풍치지구는 도시내 시가지와 녹지 및 공원이 만나는 접경지역의 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건축과 개발을 규제하는 지역이다. 말하자면 주거지역과 녹지지역의 완충지대다. 이같은 완충지대에 관광호텔을 지을 수밖에 없는 관계부처의 설명도 언뜻 보기에는 일리가 있는 듯하다. 현재 서울시내에는 관광호텔 객실이 6000실이나 부족하나 도심에는 건축 부지 확보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호텔 예약도 제대로 안되고 숙박요금도 다른 경쟁국에 비하면 비싸 외국 관광객들이 발길을 돌린다는 설명이다.

더구나 내년의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나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등 각종 국제행사를 감안하면 관광호텔 증축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지금도 관광호텔의 적정이용률은 보통 65∼68%인데 비해 우리 관광호텔의 연간 평균 이용률은 80%이상이나 된다고 한다. 이같은 객실 부족현상 때문에 관계부처에서는 호텔 높이를 4층 15m로 하는 등 현재의 풍치지구 건축규제를 준수하면서 호텔을 짓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풍치지구에 숙박시설인 관광호텔이 들어선다면 그 폐해는 불을 보듯 뻔하다. 관광호텔에는 각종 유흥시설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차량과 관광객들의 자연훼손은 물론이고 아무리 좋은 정화시설을 갖춘다 해도 오폐수에 의한 오염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풍치지구 해제나 건축허가문제 등은 항상 민원과 분규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만큼 풍치지구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 민감하다. 이런 마당에 관광호텔을 짓게 한다면 업자간의 경쟁과 인근 주민들의 반대 등 또다른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적지 않다.

서울시는 현재 시내 24개지역을 풍치지구로 정해 놓고 있지만 77년 처음 지정한 이후 그 면적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풍치지구가 완충지역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 ‘도시의 허파’라고 할 수 있는 녹지는 빠르게 잠식당할 수밖에 없다. 둑에 난 조그만 구멍하나가 둑 전체를 무너뜨리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관광호텔의 객실이 부족해 입게되는 손해와 불편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풍치지구를 건드리는 문제는 좀더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한번 훼손된 자연은 복구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피해는 대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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