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의 20세기]괴수영화, 인간탐욕의 비극 그려

  • 입력 1999년 11월 11일 19시 50분


이곳은 20세기 최고의 영화 주인공들을 모아놓은 초대형 박물관. 그러나 마릴린 먼로나 숀 코너리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손가락 하나로 두개골을 박살낼 거대한 고릴라가 버티고 서 있고, 고층빌딩도 가소로울 정도의 공룡이 당장이라도 우리를 깔아뭉갤 듯 발을 쳐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 앞에서는 거대한 타이타닉도 장난감일 뿐이다.

―‘킹콩’(1933), 당신에서부터 20세기의 영화는 괴수들의 포효로 전율하게 되었는데….

“글쎄…. 괴수들의 역사는 영화의 역사와 맞먹는다고 봐도 될 거야. ‘잃어버린 세계’(1925)에서도 거대한 공룡이 템스 강을 헤엄치며 관객을 공포에 떨게 했지. 바로 나의 아버지 윌리스 오브라이언의 솜씨였다구.”

―영화 초창기 특수 효과의 거장인 윌리스 오브라이언을 말하는 건가? ‘잃어버린 세계’라면 ‘쥬라기 공원’의 속편(1997)과 제목이 같은데….

“그런 디지털 비계 덩어리와 우리를 비교하지 말라. 예전에는 진짜 저급한 기술로도 전율할만한 괴수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얄팍한 그래픽으로 치장한 괴물들이 값싼 서커스를 벌이고 있을 뿐이야.”

―보이지 않는 것이 더 큰 공포를 가져온다는 뜻인가. 거기에 대해서는 ‘죠스’(1975)가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

“실제로 나는 그 영화에 거의 등장하지 않아. 그저 등지느러미만 슬쩍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관객은 내 모습을 상상하며 두려움에 떨었지. 어쩌면 제대로 모습을 보여줄 만큼 특수효과가 발전하지 못한 탓이었겠지만…. 감춤이 오히려 더 큰 효과를 발휘한 셈이지.”

―일본에서 태어난 ‘고질라’(1956)는 싸구려 고무 인형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오랫동안 인기를 모아왔는데, 인기의 비결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관객은 나의 외형이 진짜처럼 보인다고 해서 환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등장하게 된 은유적 상황에 매혹되는 것이 아닐까. ‘킹콩’ ‘고질라’ ‘쥬라기 공원’에 이르기까지 괴수들은 원래 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사는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탐욕스러운 인간에 의해 문명의 도시로 오게 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 ‘고질라’는 핵폭발에 의해 잠에서 깨어나는데, 어쩌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사람들에 대한 일본인의 적대감을 은연 중에 드러낸다고 할 수 있어.”

그런 ‘고질라’가 헐리우드에서 다시 영화화된 것은 매우 아이러니컬하다. 어쩌면 영화 속의 괴수들은 인간이 자연이라는 통제할 수 없는 힘을 형상화한, 20세기의 신(神)과 같은 존재는 아니었을까.

이명석(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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