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입시직전에 바뀌는 제도

  • 입력 1999년 11월 11일 19시 50분


음대 미대 등 예능계 대학입시는 여학생지원자가 남학생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실제 전형과정에서도 합격권은 대부분 여학생들로 채워진다. 그러나 예능계 대학들은 이를 무시하고 남녀를 구분해 각각 절반씩 합격자를 뽑는 관행을 유지해오고 있다. 서울대는 이러한 남녀구분 모집 제도를 올 입시부터 폐지할 방침이라고 한다. 최근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이런 입시제도에 여성차별요소가 없는지 직권조사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서울대의 이런 방침은 당장 올 입시를 준비해온 남학생들과 학부모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여성특위는 서울대뿐만 아니라 연세대 경희대 홍익대 건국대 등 8개 대학을 상대로 같은 직권조사를 예정하고 있다. 따라서 제도 폐지가 다른 대학에까지 확산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해당 남학생들은 상당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우선 지원대학을 하향조정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것도 쉽지 않다. 같은 예능계라도 대학마다 전형방법과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한 대학을 겨냥하고 상당기간 입시준비를 해온 수험생들은 갑자기 지원 대학을 바꾸는데 따른 불이익을 면할 길이 없다.

여성특위의 직권조사 결정은 그동안 여자 지원자들이 남자 합격자보다 높은 점수를 받고도 예능계 입시에서 탈락했던 모순을 시정한다는 점에서 납득할 만하다. 하지만 여성 차별 이외의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도 있다고 본다. 그 한가지는 교육적 차원에서 대학에 신입생 선발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문제다. 앞으로 무시험전형이 확대되면 대학입시를 둘러싸고 여성 차별을 포함한 갖가지 형태의 차별 시비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리더십 보유자나 봉사활동 우수자 등 선발과정에서 대학측의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되는 사례가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일일이 문제삼는 것과 대학이 알아서 하도록 재량에 맡기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바람직한지를 신중하게 따져봐야 한다. 아울러 예능계 대학이 문화예술인을 양성하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우리 문화계 전반에 가속화되는 여성편향 문제가 또다른 논쟁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대의 이번 방침은 여성특위의 결정을 존중하느냐 마느냐와는 별개로 교육행정의 졸속 사례를 다시 한번 보여준다. 입시를 불과 한달여 앞두고 갑작스레 제도를 바꾼다는 것은 전형적인 관료주의적 결정이요, 수험생들과의 약속을 위반한 꼴이 아닐 수 없다. 제도를 폐지하더라도 시행을 내년으로 미룬다든지, 남학생 할당 비율을 연차적으로 줄여나가는 등의 경과조치를 두는게 합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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