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사본 기증 운동▼
캐럴은 ‘디어 애비’라는 칼럼으로 유명한 애비게일 밴 뷰렌의 적극적인 권유로 전쟁 기간중에 쓰여진 편지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뷰렌은 자신의 칼럼을 통해 독자들에게 편지의 사본을 기증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캐럴에게 편지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 편지들은 미국 독립 전쟁과 남북전쟁에서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역사를 장식하고 있는 모든 전쟁을 망라하고 있다. 편지의 숫자로 보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쓰여진 편지가 가장 많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한 미국인 병사는 남동생에게 보낸 1944년 5월28일자 편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안녕, 미첼. 어느 누구도 전투를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냐. 공포 분노 굶주림 갈증 피로 혐오감 고독 향수를 모두 합해서 한꺼번에 분출한다면 전쟁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것에 가까이 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 전쟁은 사람들이 스스로 왜소하고 무기력하고 고독하다고 느끼게 해.” 폴 커티스라는 이름의 이 병사는 3일 후 이탈리아의 안지오에서 전사했다. 그는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커티스가의 3형제 중 한 사람이었다.
▼독립전쟁·한국전 망라▼
캐럴의 집에는 이런 편지가 1만5000통이나 쌓여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지금도 편지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캐럴은 종전 기념일인 11일에 이 편지들 중 일부를 처음으로 대중에 공개했다. 캐럴은 또한 이 편지들을 모아서 책으로 펴내는 문제를 놓고 출판사들과 협의 중이다. 캐럴은 이미 두 권의 책을 편집해본 경험이 있다.
캐럴은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에 다니고 있을 때, 워싱턴에 있던 가족들의 집이 불타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그 때부터 편지를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집이 불탔을 때 “가장 충격적인 것은 편지들이 모두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이었다면서 전쟁을 겪은 세대가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있는 만큼 이 ‘귀중한 고백들’을 망각으로부터 구해내는 것이 매우 시급한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제 갓 서른 살이 된 캐럴은 또 자신이 젊다는 사실이 편지를 보존하는 작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세대가 이 편지의 주인들이 했던 일에 충분히 감사하지 않고 있는 것이 두렵다”면서 “우리 세대가 알고 있는 유일한 전쟁인 걸프전과 코소보전쟁은 마치 비디오게임 같았다. 전쟁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캐럴이 모은 편지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경험한 전쟁의 현실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때로는 시적인 표현도 눈에 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한 보병은 이렇게 썼다. “전투를 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영혼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젊은 세대에 큰 교훈▼
전쟁 중에 심한 고뇌를 느꼈던 경험에 대해 쓴 편지들도 눈에 띈다. 호레이스 에버스 하사는 어머니에게 보낸 1945년 5월2일자 편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오늘 나는 뮌헨에 있는 히틀러의 사치스러운 아파트에 앉아 있습니다.” 에버스 하사와 그의 동료들은 바로 하루 전에 다카우 강제 수용소에 진주했었다. 에버스 하사는 같은 편지에서 “내 눈으로 본 것을 지금도 믿을 수가 없다”면서 화장을 기다리고 있는 시체들로 가득 찬 방과 뼈와 가죽만 남은 사람들이 빼곡이 들어찬 유개 화차를 묘사했다.
그러나 캐럴이 모은 편지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역시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고백들이다. 리처드 코완 일병은 자신의 22번째 생일인 1944년 12월5일에 이런 편지를 썼다. “내가 부쩍 자란 것 같아요. 그렇죠, 엄마? 그래도 난 내가 집으로 돌아가면 엄마가 내 침대 옆에서 나를 재워줄 거라고 아직 믿고 있어요.” 그러나 그는 1주일 후 전사했다.
(http://www.nytimes.com/yr/
mo/day/news/arts/soldier―lette
rs―tv.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