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대개 조교수로 한번 채용이 되면 정년까지 보장이 되기 때문에 결국 똑같은 사람들이 수십 년씩 같은 직장에 몸담게 된다. 여기에 대학간에 유효한 경쟁이 없이 전통과 브랜드만으로 대학의 우열이 가려지면 교수들은 연구나 강의를 잘해야 하는 압력을 별로 받지 않게 된다.
▼純血주의 폐기해야▼
최근 교육부가 교수채용에서 본교출신 비율을 제한하는 궁여지책을 대학에 강요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대학의 폐쇄성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대학에서 우수한 연구실적이 있는 교수의 중간 채용이 가능해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언론기관도 마찬가지이다. 대학 졸업생을 한번 채용하면 그 후로는 새로운 인재가 등용되지 않으니 기자들이 자질을 향상시키고 지식을 축적할 인센티브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외국에서와 같이 지방지나 지방방송국에서 좋은 업적을 쌓은 사람들이 중앙 언론기관에 특채되는 제도가 도입돼야 하며, 다른 업종에서도 새로운 피가 수혈되어야 한다. 일부 방송국에서는 임원은 반드시 본사 직원 중에서 선임돼야 한다는 규정까지 두고 있으니, 이러한 제도 속에서 조직의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에서 초우량기업을 연구한 결과를 보면 임원 중 최소 20% 정도는 외부에서 발탁해와야만 조직이 정체되지 않고 혁신을 도모할 수 있다고 한다.
조직이 거의 100% 내부 승진만을 고집했을 때 생기는 문제는 서너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일생 같은 밥을 먹고 자라다 보니 사고방식이 같게 되고, 따라서 혁신이나 창의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다. 둘째 조직의 본업에 충실한 과업지향적 인사보다는 위아래 인간 관계만을 열심히 하는 관계지향적 인사들이 조직내에서 득세하는 경향을 보인다. 때로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오히려 조직에서 왕따당하는 현상까지도 나타난다. 셋째 순혈주의가 심해지면 부서 자체가 거대한 이익 집단화한다. 바로 정부부처가 그렇게 돼 있다. 각 부처는 자기 부처의 공무원들이 정년퇴직한 다음까지도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 놓으려고 애쓰고 있다.
예를 들면 환란의 주역이었던 구 재정경제원은 종금사와 같은 제도를 만들어서 고위간부들의 퇴직후 일자리까지 주선해 주었다.
▼낙하산人事 우려도▼
그러나 개방형 임용제도를 자칫 낙하산식 인사의 대상으로 삼아 정치권에서 압력을 넣어 사람을 밀어 넣으면 이 제도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게 될 것이다. 한 직장에 오래 근무하는 것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고 장점도 있다. 무엇보다도 한 직장에 오래 근무하다 보면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생기고 또한 애사심이 생긴다. 전문지식이 축적돼 기술이나 기법개발이 촉진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상적인 것은 중간 이상의 직종의 일정비율을 개방하는 방법이며, 이런 의미에서 최근 개방임용제는 아주 바람직한 제도라고 판단된다.
이 제도가 정착되려면 공무원사회 전체가 더 개방적이 돼야 할 것이다. 별 볼일 없는 한직만을 개방대상으로 하거나 중간에 들어온 사람들을 경원해서는 안될 것이다. 중하위직에서 업적평가와 보상제도가 제대로 시행돼야 한다. 현재와 같이 업적보다는 비리나 업무에 대한 감사가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면 인사제도를 바꾸어도 무사안일이나 복지부동의 조직문화를 바꿀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의 거의 모든 생활이 규제 대상이 돼 있는 현재의 한국과 같은 상황에서 공무원들이 제대로 일하고 관료제도가 효율적이 되면 국가경쟁력이 엄청나게 좋아 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익집단화한 부처나 단위조직간에 인사이동이 촉진되고 새로운 피가 수혈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결국에는 5급임용 고시제도를 없애야 할 것이며, 제대로 된 업적평가제도를 통해 승진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일정 직급 이상에 대해서는 개방형임용의 폭을 좀더 확대해야 할 것이다.
정구현<연세대 경영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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