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홍/고엽제와 미국의 양심

  • 입력 1999년 11월 16일 19시 14분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군사력이다. 재래식 군사력이란 무기와 병력을 뜻한다. 그러나 현대전에서는 과학기술력이 새로운 핵심요소로 등장했다. 직접 전투에 쓰이는 첨단무기뿐만 아니라 적의 동태를 살피는 정보수집 장비와 작전환경을 유리하게 만드는 수단들이 매우 중요해졌다. 베트남전에서 밀림의 나무들을 제거하기 위해 살포된 고엽제도 그런 ‘간접 무기’로 과학기술력의 산물이다.

▽고엽제는 미국의 대표적 화학회사인 다우케미칼이 생산했다. 미 중북부 미시간주에 있는 이 회사는 본래 가정용 플라스틱 제품으로 돈을 벌었다. 그러나 1,2차대전때 발포성 가스 ‘머스터드’와 베트남전 때 고엽제 및 네이팜탄을 납품해 가장 크게 돈을 벌었을 것이다.

▽베트남전 당시 미국의 7개 화학회사가 ‘에이전트 오렌지’라 불리는 고엽제를 미군에 납품했다. 이 약품은 근사한 색감을 자아내는 그 이름과 달리 맹독성이다. 실험동물에 노출시키면 유산, 불치 피부병, 선천적 결손아 출산, 화학성 암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미군이 베트남전에서 고엽제를 살포할 때는 방독면을 쓰고 저공비행하는 헬기를 이용했다.

▽주한미군이 68,69년에 휴전선남쪽 비무장지대에 상당한 양의 고엽제를 뿌렸다는 보도는 충격적이다. 지금까지 우리 땅에 그런 맹독성 화학물질이 살포됐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놀라움은 더욱 크다. 미국정부도 베트남전 때 이외에는 고엽제를 살포한 일이 없다고 말해 오지 않았는가. 30년전 군사작전이라서 그동안 기밀에 갇혀있다가 이제야 비밀해제된 모양이지만 거짓말과 기밀보호는 다르다. 미군은 베트남에서 고엽제를 자신들이 직접 뿌릴 때는 인체보호에 만전을 기했으면서 한국군이 뿌릴 때는 아무런 장비도 갖추지 않은채 작업 하도록 방치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할 말을 잃는다.

김재홍〈논설위원〉nieman96@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