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초 성명서 내용이 알려진 다음 인천지역 82개 고교의 학생지도 교사들은 교육청 주관으로 대책회의를 가졌다. 직전까지 성명서 채택에 적극적이었던 학생들은 이 회의가 끝난 다음 이름을 빼달라고 다투어 요청을 해왔다고 한다. 학교측으로부터 유형 무형의 압력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런 해프닝을 통해 학교측의 권위적인 자세가 수십년전에 비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실감한다.
▽성명서는 비교적 담담하게 현실을 꼬집고 있다. 고교생에게 술을 파는 어른들을 탓하고 있지만 화재가 난 시각 ‘가지 말아야 할 장소’에 있었던 자신들의 잘못도 인정하고 있다. 충격적인 참사를 접한 학생들로서 한번쯤 해볼 수 있는 ‘의사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정도의 성명서라면 오히려 학생들 자유의사에 맡겼더라면 어떠했을까.
▽호프집 사고 이후 학교를 살리자는 캠페인이 교육단체를 중심으로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학교 살리기’는 궁극적으로 학교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이고 그 실마리는 학교와 학생의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학생들은 학교를 ‘거대한 벽’으로 표현한다. 아무리 소리를 크게 질러도 전달이 되지 않는…. 호프집 참사에는 이같은 ‘단절’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토록 많은 생명을 잃고도 학교는, 선생님들은 좀처럼 ‘열린 자세’를 보이지 않으니 성명서에 나오는 구절처럼 ‘하늘에서 지켜볼 55개의 별(희생자)들에 부끄러울’ 따름이다.
〈홍찬식 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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