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몸이야기/털]머리카락 6년간 1m 자라

  • 입력 1999년 11월 18일 20시 02분


‘털없는 원숭이’.

영국의 세계적 동물학자 데스몬드 모리스가 67년 내놓은 ‘네이키드 에이프(The Naked Ape)’책의 한국어판 제목이다. 사실 인류는 193종의 영장류 중 유일하게 맨들맨들한 피부를 가졌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벌거벗은 원숭이’라면 모를까 이 제목은 적당치 않다.

사람의 머리털과 수염은 깎지 않고 내버려 두면 영장류 중 가장 길게 자란다. 머리카락 한 가닥은 6년 동안 1m까지 자랄 수 있다. 또 수염은 2년 간 30㎝가 자라며 기네스북에 따르면 수염이 3.3m인 사람도 있다. 사실 인류는 선사시대 긴 머리털과 수염을 치렁치렁 흩날리며 들판을 누빈 ‘긴머리 동물’이었다.

▼털은 피부다▼

우리 몸에 난 500만개의 털은 위치와 성분 발생학적으로 피부에 속한다.

털은 진피와 피하지방 사이의 털주머니(모낭·毛囊)에서 만들어지고 피부 속의 털은 털뿌리(모근·毛根), 밖은 모간(毛幹)으로 불린다.

털은 바깥으로 나가면서 케라틴이 뭉쳐지면서 굳어지는데 케라틴은 피부의 가장 바깥층에 있고 벗겨지면 때가 되는 각질과 손톱의 성분이기도 하다.

털은 임신 20주부터 나기 시작한다. 피부의 발생시기와 엇비슷하다. 이 배내털은 임신 32∼36주까지 자라다가 빠지고 대신 솜털이 자란다.

▼로멘스 그레이는 없다▼

인종별 민족별로 털의 색깔이 다른 것은 털주머니로 들어가는 멜라닌색소 때문. 입자 모양과 양에 따라 검정 갈색 금발 등의 머리가 생기며 머리털의 색깔과 다른 부위 체모 색은 대체로 일치한다.

머리색 별로 머리카락 수도 다른데 금발은 14만개, 갈색은 10만8000개 정도. 붉은 머리털은 9만개를 넘지 않는다.

흔히 노인을 실버 세대라고 하는데 이것은 일본식 영어. 하지만 은색 또는 회색 머리카락은 없다.

멜라닌색소가 털주머니로 들어가지 못하면 흰색이 될 뿐이며 은색 또는 회색으로 보이는 것은 흰색과 검은색 머리카락이 섞여있어서이다.

▼거웃은 왜 있나?▼

20세기 중반 모딜리아니와 피카소 등이 거웃을 작품 속에 그리기 전엔 화가들이 이것을 작품 속에 담으면 외설에 속했다.

또 과학자들은 왜 음모가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일부에선 성기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하지만 무모증일 경우 마찰로 음부가 상했다는 기록이 없으므로 설득력이 약하다.

가장 타당한 설명은 겨드랑이털과 마찬가지로 성적 냄새를 보관하고 운반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

한편 동물들은 적대감을 표시할 때 입모근(立毛筋)이 움직여 털을 뾰족하게 세우는데 사람은 추울 때나 무서울 때 털이 약간 선다.

호기심 많은 과학자들은 성적 흥분기의 초기에 음모 부근의 입모근이 움직여 거웃이 부르르 일어섰다가 가라앉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털과 문화▼

머리카락 한 가닥은 160g의 무게를 지탱한다. 머리털을 다 뽑으려면 16t의 압력이 필요하다. 중국의 곡예사는 머리털로 공중에 매달려 온갖 재주를 부린다. 그만큼 인간 머리털의 힘은 놀랍다.

고대에선 머리털을 힘의 상징으로 여겼고 케사르(Caesar)도 사실 ‘머리털이 난’‘머리털이 긴’의 뜻.

고대 이라크 북부지역의 앗시리아인은 최초의 헤어스타일리스트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눈금을 대고 수염을 잘랐고 긴 머리는 곱슬거리게 해서 가슴 위까지 늘어 뜨렸다.

반면 그리스와 로마인들은 면도하는 풍습이 있었다. 알렉산더대왕은 전쟁에서 적군에게 수염을 잡히지 않기 위해 면도하라고 명령했었다.

그래서 마케도니아군은 적군을 턱수염(Barba)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오늘날 영어 이발사(Barber)와 야만인(Barbarian)의 어원.

한편 수염은 남성미를 나타내지만 지저분해 지는 것이 흠. 그래서 콧수염을 근사하게 다듬으면 남성다우면서도 깨끗한 얼굴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70년대 동성연애자 사이에서 콧수염이 유행하면서 이들이 ‘멀쩡한 신사’들을 따라다니자 일반인 사이에서 유행은 사라졌다.

최근 세계적 면도기제조업체인 질레트는 바르면 수염이 안자라는 크림을 개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 보드랍고 긴 머리는 여성미를 나타낸다.

어린 기생과 관계맺는다는 뜻의 ‘머리 얹히다’를 빗대어 요즘 우리나라에선 골프장에 처음 나갈 때 ‘머리 올린다(얹다)’고 하지만, 서양에서는 ‘머리를 푼다’는 것이 여성의 몸을 허락한다는 뜻이었다. 머리를 자르는 것은 일종의 ‘궁형(宮刑)’.

2차 세계대전 뒤 프랑스 파리에선 나치에 협력한 여성들이 거리에 끌려나가 머리를 깎이는 수모를 당해야만 했다.

〈이성주기자〉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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