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식의 과학생각]머리 좋아지는 방법

  • 입력 1999년 11월 18일 20시 02분


은행잎 추출물, 산화 방지제, 호기성운동, 십자 말풀이.

대학 수능시험이건 사법고시이건 기억력으로 승부하는 젊은이들이 알아둘 만한 머리가 좋아지는 비결이다.

푸른 은행 이파리의 추출물은 뇌의 혈액 공급을 증대시켜 기억력을 향상시킨다. 비타민 E와 C같은 산화방지제는 혈관벽을 파괴하는 화학물질을 제거하므로 세포 손상에 따른 기억력 감퇴를 예방한다.

산보 줄넘기 수영처럼 지속적으로 산소가 공급되는 호기성 운동을 하면 기억력이 좋아진다. 뇌는 근육처럼 사용하지 않으면 활력을 상실하기 때문에 독서나 주간지의 십자 말풀이와 같은 정신 운동이 필요하다.

네 가지 방법은 과학적으로 효능이 검증되지 않았다. 가령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은행잎 추출물에 대해 식품의약국(FDA)과 국립보건원(NIH) 모두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나머지 세 가지 역시 기억력에 영향을 미치는 메커니즘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뇌가 학습하고 기억하는 능력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기억 연구진이 가장 관심을 갖는 뇌의 부위는 신경세포 표면에 위치한 NMDA 수용기이다. 9월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진은 영국 과학잡지 ‘네이처’에 NMDA 기능을 향상시킨 실험결과를 발표했다.

NMDA의 구성요소인 NR2B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생쥐의 배아에 집어넣었는데 자란 뒤에 보통 생쥐보다 학습능력이 뛰어났으며 해마(海馬)에서 NR2B가 두 배 가량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해마는 기억에 관련된 뇌의 영역이다.

요컨대 포유류에서 최초로 유전자 조작으로 학습과 기억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음이 입증된 셈이다. 이 연구결과 사람의 NMDA 수용기가 생쥐의 그것과 얼추 같기 때문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사람의 뇌는 생쥐의 뇌와 기능이 크게 다르다. 사람의 기억력이 한 개의 유전자에 의해 좌우될 리 만무하다. 더욱이 사람의 지능은 유전된다기보다는 환경의 지배를 받는 측면이 강하다.

그럼에도 제약회사와 생명공학 기업들은 이 연구 결과의 상품화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NR2B 단백질의 활동을 자극하는 약을 만들면 알츠하이머 병처럼 노화되면서 발생하는 기억력 상실을 치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신약 개발은 치료 목적에 국한되지 않을 것 같다. 건강한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력을 증강시키는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인지상정일 터이다. 이른바 스마트 필(머리 좋아지는 약)이 나오면 일류 대학과 고시 합격이 지상목표인 우리 사회에서 날개 돋친듯 팔려 나갈 것이다.

그러한 약이 결코 정상적인 사람의 인지 능력을 향상시킬 수 없다고 보는 회의적 시각이 만만치 않지만 프린스턴 대학 연구진은 10년쯤 뒤에 개발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

비상한 기억력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불쾌하고 부끄러운 과거를 자세히 기억하고 있으면 행복한 삶을 꾸려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사람 뇌의 망각하는 능력은 인류가 생존을 위해 진화시킨 지혜의 산물이 아닐는지.

사람이 늙어가면서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자연의 순리이다. 다만 치매에 걸려 사랑스러운 가족을 괴롭히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식사 잘하고 즐겁게 사는 것이 기억력 감퇴를 막는 최선의 방법임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이인식(과학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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