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경택칼럼]대통령부터 바로 서야…

  • 입력 1999년 11월 19일 19시 40분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강조하는 말이다. 그러나 요즘의 검찰을 보면 바로 서기는커녕 휘청거리다못해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옷로비의혹사건을 수사하는 최병모(崔炳模)특별수사팀에 의해 새로운 사실이 속속 드러남에 따라 검찰은 이에 대한 해명을 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문제의 밍크코트가 김태정(金泰政) 전법무장관의 부인 연정희(延貞姬)씨에게 배달, 반납된 날짜를 비롯해 지난 5월 검찰수사내용을 뒤집는 사실들이 밝혀지면서 ‘사기 미수극’이란 결론을 낸 ‘보통’ 검사들의 ‘엉성한 작품’은 맥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형사기동대 차까지▼

이 사건의 검찰수사결론이 깨질 수밖에 없는 것은 이미 수사 당시에서부터 예고되고 있었다고 보는 게 옳다. 우선 사건의 핵심인물인 연정희씨를 ‘극진히 모시는’ 검찰의 태도를 지켜본 시민들은 ‘과정을 보면 결과를 안다’면서 수사결과는 보나마나 아니냐고 일찌감치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연씨가 조사를 받고 귀가할 때 대역(代役)까지 동원해가며 기자들을 따돌린 소동은 당시 신문 사회면을 크게 장식해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러나 연씨가 검찰에 조사받으러 들어갈 때의 사정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익명의 제보자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왔다. 놀랍게도 경찰서 수사용 차량까지 동원했다는 것이다. 확인결과 사실로 드러난 제보 내용은 이렇다. 승용차를 타고 검찰청에 들어가려던 연씨는 입구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을 알고 청사주변을 빙빙 돌면서 기회를 엿봤으나 헛일이었다. 검찰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얘기했다. 검찰은 연씨에게 인근 경찰서로 들어가 있으라고 하고는 경찰서에 연락했다. 형사기동대 차로 연씨를 데리고 오도록 했다. 이래서 연씨는 경광등이 번쩍번쩍하는 차를 타고 검찰청 지하주차장 쪽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기자들을 완전히따돌릴수있었다.

그러면 연씨는 왜 이처럼 전례없는 ‘특별대접’을 받았나. 불과 며칠 전까지 자신들이 직접 모시던 검찰총장, 수사당시에는 역시 검찰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법무장관의 부인이기 때문이랄 수밖에 없다. 장관도 보통 장관이 아니라 대통령이 특별히 생각하는 장관이었다. 당시 상황을 보면 그렇다. 김대통령은 옷로비사건이 터지기 이틀전인 5월24일 개각을 하면서 여론이 썩 좋지 않던 김태정검찰총장을 법무장관으로 임명했다. 더욱이 김총장은 총장임기를 2개월여 남겨두고 있었다. 김대통령은 정권교체로 새 정부가 출범할 때도, 연초 소장검사들의 서명파동으로 총장사퇴론이 나왔을 때도 ‘임기제인 총장을 함부로 바꾸면 검찰의 중립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로 경질하지 않았다. 이런 원칙을 깨면서까지 법무장관을 시킨 것은 그만큼 인정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고, 검찰간부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짜깁기'가 된 원인▼

검찰수사가 연씨를 보호하기 위한 ‘짜깁기’가 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라고 생각되는 상황이 또 있다. 국내에서는 옷로비사건수사로 한창 시끄러울 때인 지난 6월1일 김대통령은 러시아를 다녀오면서 이 사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김대통령은 ‘투명하게 조사하도록 지시했다’는 전제하에 이렇게 말했다. “법무장관문제는 수사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수사결과 부인이 잘못한 게 있으면 책임을 져야한다. 그러나 잘못이 없는데 마녀사냥식으로 몰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는 생각해봐야 한다.”

이 말 가운데 접속사 ‘그러나’로 연결되는 뒷부분의 의미를 새겨보면 대통령의 의중을 쉽게 읽을 수 있다. 물론 검찰에서도 이를 놓쳤을 리 없다. 대통령의 이런 말이 있은 다음 날 검찰은 옷로비사건을 ‘단순 해프닝에 불과한 사기 미수극’으로 결론지었다.

그러면 김대통령은 왜 김태정전장관에 대해 남다른 생각을 갖게되었을까. 한마디로 ‘바른 법조인’으로 봤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봤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김대통령이 6월10일, 그러니까 김장관이 진형구대검공안부장의 ‘파업유도’발언으로 해임된지 이틀후 청와대에서 국민회의 의원들과 만찬을 하면서 털어놓은 얘기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김태정 전검찰총장을 법무장관에 임명한 것은 대선전 한나라당이 조작한 ‘DJ비자금’ 수사를 유보하고, 선거후에는 한나라당의 국세청모금사건을 묵과할 수도 있었는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고 바른 법조인의 자세를 느꼈기 때문이다.”

결론을 맺자.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맞는 말이다. 검찰이 바로 서려면 대통령이 바로 서야한다는 말은 틀린 말인가.

어경택〈논설실장〉euh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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